“일본도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통해 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하자는 뜻에서 일본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연극 ‘그날, 그날에’를 일본에서 공연한 연출자 이토 가쓰아키(伊藤勝昭·57·사진)의 말이다.
이 작품은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이반 교수(59)의 원작. 속초에 정착한 월남 어부들의 애절한 망향의 정을 통해 통일에 대한 염원을 그렸으며 신구세대간 통일관 차이도 갈등 요소로 등장한다.
공연장인 도쿄 한국YMCA회관은 3·1운동의 촉매역할을 했던 재일 유학생의 2·8 독립선언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여서 이번 공연(2월26일∼3월3일)의 뜻을 더욱 깊게 했다. 이번 공연은 이토씨와 뜻을 같이하는 일본의 중견 연극인들이 2000년에 결성한 ‘3·1회’가 주도했다. ‘현대’ ‘세대’ ‘배우좌’ 등 일본의 여러 극단에서 활동하는 중진 연극인들이 한국을 사랑하고 통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뜻에서 만든 모임.
이토씨는 히로시마(廣島) 출신의 연극인. 징용으로 끌려온 한인의 2세들과 어린 시절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차에 90년대 초 선배 연극인 다카도 가나메(高堂要·작고)와 함께 한일 연극 교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2000년에는 제암리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총검과 처용무’(이반 원작)를 무대에 올렸는데 이를 계기로 일제 만행을 새삼 깨닫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졌다.
“한국인의 ‘한(恨)’이 단순한 원한과 다르다는 것, 속 깊은 의미를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됐습니다.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역사를 몰라 걱정입니다.”
1일 오후 찾아간 공연장은 비가 뿌리는 날씨 탓인지 200석의 객석 일부가 비어 있었다. 한국 어촌의 풍경이나 남북 분단 상황이 일본 관객의 눈에 제대로 이해되려나 싶었지만 막이 내린 후 눈물을 찍으며 자리를 뜨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 50대 여성은 “작년 일본인 납북자가 24년 만에 가족과 재회하던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대본과 연출을 담당한 이토씨는 정통연극이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한국 일본 모두 마찬가지라고 소개했다. “가벼운 연극이 판치고 있는데 모처럼 제대로 된 연극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며 격려해주는 관객들도 있습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이 교수는 “순수한 뜻으로 뭉친 일본의 중견 연극인들의 진지한 리허설과 연기를 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면서 “내년에 서울 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