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일본 오키나와에서 흥미로운 뉴스가 전해졌다. SK의 엄정욱이란 투수가 전지훈련지인 오키나와에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서 스피드건에 꿈의 160㎞를 찍었다는 소식이었다. 160㎞는 국내 프로야구에선 그 누구도 던져보지 못한 구속. 비공인이긴 하지만 신기록이 나온 것이었다.
일본에선 미국 텍사스에서 뛰다 한신으로 컴백한 이라부 히데키의 158㎞ 기록을 지난해 오릭스의 야마구치 가즈오가 타이를 이뤘다. 미국에선 박찬호가 LA다저스 시절 161㎞, 샌프란시스코의 롭 넨이 최고인 164㎞까지 던졌다.
올해 22세로 프로 3년생이 되는 엄정욱은 아직 1군에서 제대로 뛴 경험조차 없지만 공 빠르기에 관한 한 데뷔 초부터 세인의 입에 회자됐던 선수. 지난해 5월에는 기아와의 인천경기에서 156㎞를 던져 공식경기 최고기록을 세웠고 4월 2군경기에선 159㎞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지는 이번 엄정욱의 기사를 단 한줄도 취급하지 않았다.
먼저 스피드건을 믿지 못했기 때문. 스피드건은 그날 던진 투수의 상대평가는 될지언정 절대평가는 어렵다. 스피드건은 전파를 발사해 공에 부딪히게 한 뒤 반사된 전파의 주파수가 변하는 도플러 원리를 이용해 속도를 검출해낸다. 이때 스피드건은 포수의 바로 뒤에서 투수를 향해 곧바로 전파를 발사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 그러나 자체 청백전 같은 데서 측정하는 스피드건은 거리도 떨어져 있을 뿐더러 포수와 심판의 등을 피하기 위해 대체로 입사각을 비스듬하게 잡는 게 상례. 편차각이 10도면 속도가 2%는 차이가 난다고 한다.
똑같은 공을 측정해도 구단의 스피드건마다 속도차가 크게는 6,7㎞까지 나는 것도 문제다. LG가 두산보다, 두산이 현대보다 빠르게 나온다는 게 정설이다.
두 번째로는 엄정욱이 은퇴한 선동렬이나 박동희, LG 이상훈 같은 슈퍼스타가 아니란 점이 작용했다. 지난해 엄정욱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지만 고작 5경기에 나가 6이닝을 던졌다. 안타는 1개밖에 맞지 않았고 탈삼진은 무려 9개나 잡았지만 볼넷 7개, 몸에 맞는 공 2개에 폭투마저 3개를 기록하는 등 제구력에선 동네 투수란 혹평을 받았다.
공이 빠르면 유리하겠지만 곧바로 훌륭한 투수란 뜻은 아니다. 주위에서도 엄정욱의 빠른 공에 흥분만 할 것이 아니라 그가 국내 최고의 강속구 투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