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싱의 무하마드 알리와 프로 레슬링의 안토니오 이노키가 벌인 ‘세기의 대결’을 기억하는가. 이들은 한창 전성기때인 76년 링 위에서 격돌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결과는 15회 무승부. 이노키는 경기 내내 드러누운 채 로우 킥만 연발했고 알리는 핵펀치 한번 날려보지조차 못한 채 발차기 선수로 변신해야 했다.
이유는 어정쩡한 중립 룰 때문. 당시 프로모터는 복싱과 프로 레슬링의 룰을 종합해 알리에겐 글러브를 끼게 했고 이노키에겐 더욱 불리하게 밑으로 파고들거나 끌어안는 기술을 쓰지 못하게 했다.
만약 최소한의 규칙만 정해 놓고 싸운다면 결과는 어떨까. 마침 국내에서도 이달 말 이종(異種) 격투기 대회가 열린다. 무기없이 맨주먹으로 싸울 경우 과연 어느 종목의 누가 최강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각 종목의 고수들로부터 전망을 들어봤다.
▽복싱:홍수환(전 WBA 밴텀급, 주니어 페더급 세계 챔피언)=이종 격투기 룰이 어떤지 궁금하다. 잘못하면 막싸움이 된다. 잔인하고 비신사적인 행위가 나올 수도 있다. 이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같은 일은 말리고 싶다. 어쨌든 좁은 장소에서는 복싱이 유리하다. 복싱은 하체가 약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상하체의 균형을 잡기 위해 하체훈련을 많이 한다. 복싱은 상대가 붙잡고 나와도 약하지 않다. 가까이 붙어도 다양한 기술이 있다. 실전에서 복싱선수들이 유도나 레슬링 선수를 쉽게 이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복싱의 강인함을 지켜봐 달라.
▽레슬링:심권호(96애틀랜타, 2000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근접 기술로 레슬링을 이길 종목은 없다고 감히 자신한다.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동료들이 타 종목 선수와 싸우는 것을 여러번 봤다. 레슬링은 한번 잡으면 그걸로 끝이다. 유도의 관절 꺾기나 상체를 이용한 가격 기술도 능하다. 어느 정도 체중 차이가 나도 문제 없다.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이종 격투기 경기도 자주 본다. 복싱이나 태권도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격을 하는 종목보다는 붙어서 싸우는 종목이 무조건 유리하다.
▽유도:최종삼(대한유도회전무)=미국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세계격투기대회가 열리면서 가장 많이 우승을 한 종목이 유도다. 유도는 매치고 조르고 꺾는 등 단숨에 상대의 급소를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 많아 유리하다. 하지만 모든 무술은 고유의 장점이 있어 어떤 무술이 가장 세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격투기간 대련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용인대내에서도 이를 금기시하고 있다.
▽태권도:스티븐 케이프너(전 미국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태권도는 상대와 맞잡고 붙으면 이기기 힘들다. 손 기술이 방어와 지르기밖에 없다. 또 태권도에선 주먹 지르기로 얼굴을 가격할 수 없어 실제 싸움에서 주먹으로 상대 얼굴을 때리려면 익숙지 않아 주춤거리게 된다. 발차기가 위력적이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유술이나 레슬링, 유도는 상대와 붙잡고 싸우기 때문에 발차기로 한방에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질 수 밖에 없다. 막싸움에선 태권도가 불리한 점이 많다.
▽유술:이희성(사범)=맨손으로 싸우면 어떤 상대를 만나도 99.9% 이길 자신있다. 물론 체중이 비슷해야 한다. 상대가 체중이 많이 나가면 파워에서 밀려 싸우기 힘들다. 총이나 칼이 아닌 몽둥이를 들고 싸우는 사람도 문제가 안된다. 유술은 유도와 레슬링을 합쳐 놓은 것으로 브라질에서 만들어졌다. ‘주지쓰(Jiu Jitsu)’라고 불린다. 유술은 1대1로 싸울 때 이기기 위한 모든 기술이 다 있다. 떨어져 있을 때 상대에 달라붙는 법, 붙었을 때 상대를 공략하는 법 등 그 어떤 격투기도 유술에는 상대가 안된다. 누구든 덤벼라. 유술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무에타이(킥복싱):김승훈(사범)=이번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는 팔꿈치로 얼굴 가격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무에타이에게 불리한 룰이다. 무에타이는 팔꿈치 공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팔꿈치로 얼굴을 공격하는 기술도 많다. 무에타이에서 이 기술을 빼면 약방에서 감초를 빼는 격이다. 하지만 무에타이는 원거리와 근거리 공격 기술이 다양하고 접근전에서도 팔로 상대를 잡은 뒤 무릎으로 공격하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다. 무에타이야말로 실전무술이다. 하지만 바닥에 넘어진 다음의 기술은 좀 생각해봐야겠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무술의 지존’가린다…29, 30일 잠실학생체육관서 국내 이종격투기대회 개최
일본 이종격투기 대회인 ‘K-1’의 슈퍼스타 피터 아츠(네덜란드·킥복싱)가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사진제공 스피릿코리아
태권도,레슬링, 공수도, 합기도, 우슈, 유도 등 서로 다른 무술의 고수들이 링 위에서 맞붙는다면….
무술의 지존을 뽑는 ‘이종(異種)격투기대회’가 한국에서도 열린다.
스포츠마케팅 업체인 스피릿코리아(www.spiritmc.org)는 실전 종합무술 대회인 ‘스피릿MC’(총상금 5천만원) 대회를 개최한다. 14일까지 참가 접수 중. 출전 자격은 20세이상의 격투능력을 갖춘 남자.
29, 30일 이틀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64강 토너먼트로 예선전을 치른뒤 여기에서 뽑힌 4명과, 각종 타이틀소지자 등 ‘초청고수’(와일드 카드) 4명이 4월26일 오후 5시 장충체육관에서 마지막 승자를 가린다.
승부는 8각링에서 치러진다. 마우스피스와 글러브 외 특별한 보호장구는 없다. 체급제한도 없다. 그러나 너무 잔인하거나 비신사적인 행위가 나올 것을 우려해 몇가지 기본적인 룰을 정해 놓았다. 우선 낭심공격이 금지된다. 또 팔꿈치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도 안된다. 예선전은 5분 2라운드. 이 때까지 KO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 1라운드를 더한다. 그리고도 KO 승부가 나지 않으면 판정으로 승부를 가린다. 심판은 태권도 유도 복싱 등 격투기 전문가출신들로 구성된다. 결선에서는 5분 3라운드 연장 3라운드를 벌인다. 연장전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역시 판정으로 우열을 가린다. 디지철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Sky Life)에서 중계.
태권도 합기도 국술 킥복싱(무에타이) 레슬링 유도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참가신청을 하고 있다. 이번대회는 유혈이 낭자한 해외 이종격투기대회와는 달리 동양의 무술정신을 강조하는 취지로 열려 심한 유혈극은 벌어지지 않을 전망.스피릿코리아측은 앞으로 연 4회 이상 국내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450전 무패 브라질 유술 ‘힉슨’세계 최강자 우뚝
힉슨 그레이시
‘이종격투기’는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주무대인 일본에서는 2∼3만장의 표가 매진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종격투기대회는 비공식적으로 열려왔으나 70년대 브라질에서 생긴 ‘발리 투드’(Vale Tudo·포루투갈어로 뭐든지 가능하다는 뜻)대회가 생기면서 공식무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90년대부터 공식대회가 성행했다. 유럽 호주에서도 많이 열린다.
‘빅 3’ 대회는 미국의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일본의 ‘프라이드’ ‘K-1’이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유명선수들도 이들 무대에서 뛰며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의 마크 콜맨(레슬링), 일본의 요시다(유도) 등이 그 예.
‘UFC’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안면가격이 허용돼 유혈이 낭자하다. ‘프라이드’는 전세계 최강의 고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싸운다는 뜻의 명칭이다. 토너먼트형식보다는 강자끼리의 1대1 대결이 많다. ‘K-1’은 가라데 쿵푸 킥복싱의 앞 글자 ‘K’와 최고를 뜻하는 숫자 ‘1’을 결합시킨 명칭이다.K-1’은 서서 타격하는 기술의 최강자를 가리는 경기. 화려한 공격기술이 많이 나온다. 일본에는 이밖에 ‘프라이드’의 등용문격인 10여종의 대회가 있다.
최강자는 브라질 유술(그레이시 유술)의 ‘힉슨 그레이시’가 꼽힌다. 브라질 ‘발리투드’대회에서 450전 무패의 기록을 지니고 있다. 브라질 유술은 유도가 브라질에 건너가 실전에 맞게 고쳐진 것. 힉슨은 브라질 유술의 창시자인 에리오 그레이시의 아들. 1m78, 87kg인 그는 자신의 체중보다 30∼40kg 더 나가는 다른 종목의 헤비급선수들도 제압하며 ‘지존’으로 군림해왔다. 일본무대에서의 대전료는 약 2억엔선. 그러나 2년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무대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 이종격투기대회인 ‘더 베스트’에 출전했고 국내 이종격투기대회 TV프로그램 해설을 맡고 있는 한태윤씨(30)는 “러시아의 삼보, 레슬링의 일종인 미국의 서브미션, 일본의 컴뱃 레슬링(전투레슬링) 등 꺾기 조르기 기술보유자들이 강세이긴 하지만 선수간 상대성이 크기 때문에 어느 종목이 우세하다고 딱잘라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