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주 동안 디스크로 인해 꼼짝없이 집에 머무르며 아이들을 지켜보게 됐다. 예기치 않았던 일에 우리 집 아이들은 흥분했고 함께 놀아주길 원했다. 난 그런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그건 아마도 며칠 전 막 읽기를 끝낸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어느 중국인의 100년 가족사를 담은 사진 산문집’(뜨란·2000)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중국 산둥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자오보(焦波)가 사진기를 처음 다뤘을 때부터 찍어 온 부모의 사진들을 담아 출판한 것이다. 문체는 간결하고 사진은 느낌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 준다. 투박한 손으로 삶의 체온을 전해 주시는 아버지, 언제나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어머니 품 안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가족은 기억을 함께하면서 하나가 된다.
그럼에도 기억은 우리에게 항상 행복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과거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 과거를 직시해야 하는 인간에게 역사는 본질이며 숙명이다. 동시에 인간은 삶과 행동을 위해서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잘 알려졌듯이 국민은 강력한 정부의 제도적 폭력과 통제를 통해 사육된 결과물이지만, 국민의 완성에는 자발적 헌신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 그 능동성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했으리라 상상하는 기억을 통해 배양된다. 그래서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 위한 국사 교육을 ‘발명’했고, 국사학계는 그것을 위해 위대한 기념비를 세웠다. 국사는 한때 찬란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국민국가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 익사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역사학은 방향을 잃어버렸고, 호고적(好古的) 수준으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역사는 변화하는 우리 삶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는가?
요사이 일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동아시아론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잘 모르지만, 나는 동아시아가 21세기에는 국민국가를 구성원으로 하는 지역협의체로 발전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전제 작업으로서 시간, 공간, 표현법에 대한 공감대와 공통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작업은 이미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전개된 적이 있다. 시간의 공감대 내지 공통성에 대한 문제만 해도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사기(史記)’(까치) 와 ‘자치통감(資治通鑑)’(푸른역사)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사기’는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문화권이 형성됐던 기원 전후 시기에 출현했다. 그것은 한(漢)제국의 통치를 위해 역사적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배치했을 뿐 아니라 주변 여러 국가들의 과거에 대한 기억도 중국을 기준으로 안배했다. 한편 ‘자치통감’은 신유학을 바탕으로 한 중화제국 후기의 통치 질서 구축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명대에 동아시아 문화권이 재구축되면서 주변 국가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에 기초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세종이 전국에 자치통감을 배포한 것은 시간의 공감대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민족과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참여정부는 그 작업의 일환으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이고 파편적이며 경제 이익에만 치우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성공을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그것은 새로운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이라는 역사적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피동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와 달리, 우리가 주체적으로 동아시아 공통의 시간관과 기억을 만들어야 하며, 그것은 반드시 반성과 상생(相生)의 역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범 성신여대 교수·중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