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통령을 탄생시킨 여당이 맞느냐. 한나라당보다 나은 게 뭐냐.” 대북 비밀송금사건 특별검사법과 당 개혁안을 놓고 공회전만 거듭하는 민주당의 요즘 상황을 놓고 당내에서는 자조 섞인 불만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당정(黨政) 분리라는 새 환경에 따른 청와대와의 관계 설정이 불분명한데다 신·구주류 갈등과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둔 신주류 내부의 상호견제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이러다가 내년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新-舊갈등…사고지구당 50곳 손도 못대▼7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이호웅(李浩雄) 조직위원장은 “당 개혁안이 확정되지 않아 현재 50여개에 달하는 사고 지구당에 손도 못 대고 있다. 3월 중순까지는 확정해야 한다”며 지도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김희선(金希宣) 여성위원장도 “당원들은 당 지도부가 표류하고 있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할지 모르고 있다”고 가세했다.
개혁특위가 만든 당 개혁안의 당무회의 처리가 지연되면서 지도부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혁안 처리가 지연되는 최대 원인은 신·구주류간 뿌리깊은 불신 때문이다. 구주류의 한 3선 의원은 “개혁안은 신주류가 당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살생부(殺生簿)’나 마찬가지다”며 “의원총회에서 개혁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할 것이다. 신주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고 ‘대반격’을 예고했다.
구주류는 특히 개혁파들이 앞장서 제시한 지구당 폐지 방안에 대해 “신주류와 개혁파로 지구당을 대폭 물갈이하려는 암수”라며 극력 저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신주류의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지구당 폐지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하나를 얻으려다 열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북 송금사건 특검을 놓고도 구주류와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특검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반면 신주류는 ‘재협상’을 통한 제한적 특검론을 펴고 있어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新-新갈등…정대철-김원기 힘겨루기▼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이후 신주류의 양대 축을 이뤄온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김원기(金元基) 고문의 ‘대립’도 당의 구심력 형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7일 정 대표와 김 고문 등 신주류 인사 16명이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가진 조찬모임에서는 조기전당대회 개최 문제를 놓고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김 고문과 가까운 천정배 의원이 ‘선(先) 임시 지도부 구성, 후(後) 전당대회’를 주장하자 정 대표는 “현 상황에서는 임시 체제를 뽑는 것보다는 정식 전당대회를 열어 조속히 당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김 고문이 다시 “전당대회는 새로운 대의원을 뽑아서 치러야 하므로 조기 전당대회 개최는 불가능하다”며 정 대표에 대해 반론을 폈다.
정 대표가 대표 프리미엄을 갖고 차기 당권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주류는 8, 9일쯤 다시 모임을 갖고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나 내부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 대표는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 등 구주류와도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며 전대 시기를 앞당기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가 최근 박 최고위원에게 “지구당위원장제를 폐지하고 관리위원장을 두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으니 반대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고문은 정 대표와의 갈등설과 관련, 6일 정 대표에게 전화해 “왜 갈등 얘기가 나오느냐. 그쪽에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사실 자체가 양측의 깊어진 불신을 반영하는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나사풀린 지도부…北核등 현안 입씨름만▼
북한 핵 문제, 경제위기설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민주당에선 공식 회의조차 열지 못하는 날이 적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한나라당은 매일 고위당직자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내놓고 있지만 우리 당은 부대변인들이 제각기 논평을 내는 것이 고작이다”고 탄식했다.
이러다 보니 당정간 정책 조율은 물론 당론 결집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리더십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내부에 팽배해지고 있다.
당내에서는 “북한 핵 문제가 정말 큰 일인데 당이 전대를 언제 열 것이냐 등 한가한 토론만 거듭하고 있다”(김근태·金槿泰 고문), “재벌 개혁이 누구를 잡아넣고 하는 식으로 돼서는 안된다”(강운태·姜雲太 의원)는 등 현안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이를 정부에 전달할 채널도 인물도 없는 상황이다.
현재 당-청 라인은 정 대표와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라인이 2, 3일에 한번씩 가동되고 있지만 대북송금 특검과 당 개혁안 처리에 매달려 경제 등 시급한 정책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