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신기해 하거나 때로는 고마워 하는 마음까지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럴 때는 지났다. 오히려 우리가 해외의 한국 연구를 지원할 때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떤 효과를 기대해야 하느냐에 대해 뚜렷한 방향을 세워야 할 때가 됐다.
‘한국학의 국제화’ 노력이 뿌리내리고 열매 맺기 위해선 현지의 뛰어난 젊은 학자들이 한국어를 습득하고 한국 연구에 일생을 걸도록 해야 한다. 한국학은 유능한 현지인에 의해 현지화됨으로써 국제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호주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스대에서 경제학과 국제경영학을 가르치며 동남아의 인재들을 키우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그 뒤 졸업생들이 자기 나라 학계와 정 재계에 뿌리내리면서, 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00년 한국 학술진흥재단과 뉴사우스웨일스대 공동으로 한호 아시아연구소(KAREC)를 설립했다. 지금 KAREC는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한국연구 4단계 계획을 세우고 10년 장기전략을 진행 중이다.
그 첫 단계는 네트워크 수립. 각 국에서 거점 대학을 찾고 거기서 한국연구를 할 대들보를 가려내는 일이었다. 베트남의 호치민대, 태국의 출라롱콘대 및 부라파대, 말레이시아의 말라야대,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대 등에서 총장과 학장들을 설득해 지원을 얻어냈다. 2001년 열린 제1회 국제심포지엄에서는 호주 뉴질랜드의 한국학자 거의 전원과 이들 5개 대학의 학자들이 참석해 한국학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둘째 단계는 한국어 교육이다. 각 국에서 이미 시작됐지만 환경도 열악하고 교육자료도 부족하다. 특히 능력 있는 한국어 교수의 공급이 절실하다. KAREC는 국내 교수들과 연계해 지원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지난해엔 현지 대학들과 함께 태국 등 3개국에서 워크숍도 열었다.
셋째 단계는 공동연구 수행. 현재 KAREC는 국제경영, 정보기술(IT)산업, 한류(韓流) 열풍, 문화산업 등의 분야에서 한국-호주-동남아 4개국을 연결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마지막 단계는 차세대 학자의 양성이다. 이들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한국을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선 한국에서의 수학 경험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 정부와 학계, 재계가 여기에 대해 장기적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제들 가운데 현재 동남아 네트워크의 틀은 완성됐고, 그 내용을 채우는 제2, 제3단계의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일의 가장 중요한 열매는 뭐니뭐니해도 이제 막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현지의 유능한 젊은이들일 것이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와 친구가 되고 한국을 사랑하게 되어 돌아간다면 우리의 큰 자산이 될 것은 불문가지다.
동남아에서 일본이 막강한 경제력을 행사해 왔지만 일본을 마음속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류(日流)’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 일본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가고, 아직 중국의 큰 힘은 동남아를 덮지 않았다. 앞으로 5년이 동남아에서 한국학을 현지화할 절호의 기회다. 이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우리의 친구로 초대하는 일을 같이할 기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중석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한호 아시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