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즌에도 한국에서 뛰고 싶어요.” 개구장이처럼 천진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캐칭. 권주훈기자
지난 주말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숙소. 기자가 찾은 시간이 때마침 연습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박명수 감독이 훈시를 마치자 맨 앞줄에 서있던 외국인 선수가 갑자기 바빠졌다. 주위의 동료선수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수고, 수고”를 외친다. 바로 타미카 캐칭(1m83)이다.
박 감독은 캐칭의 이런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단다. “미국에서도 스타 대접을 받아 건방질 줄 알았는데 코트 안이든 밖이든 항상 솔선수범해요. 원정경기 때 어린 선수들이 짐을 들고 가면 먼저 다가가 대신 들어주고 청소도 얼마나 잘하는데요.”
캐칭은 우리은행 숙소에서 웃음보따리. 한 번은 그가 부산스럽게 동료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모인 선수들 앞에서 난데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영시(英詩)를 낭독하는 게 아닌가. 내용도 모르는 시였지만 선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황당한 표정으로 박수를 칠 수 밖에…. 알고 보니 자작시. 캐칭의 평소 취미는 시 쓰기란다.
또 있다. 박 감독은 자신을 부르는 캐칭의 호칭에 따라 분위기를 파악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오빠, 오빠”하다가도 뭔가 심기가 뒤틀리면 “아저씨”가 되어버리기 때문.
그렇다고 캐칭이 항상 ‘천방지축’만은 아니다. 우리은행 선수들가운데 ‘인기 캡’이 바로 캐칭이다. 올스타전 MVP로 뽑혀 받은 상금 100만원을 선수 16명에게 골고루 나눠준 일만 해도 그렇다. 그것도 문구점에서 산 편지봉투와 편지지로 밤새 예쁘게 포장을 해서 돌렸다. 세 살 아래인 홍현희 생일 때 파티를 열어준 사람도 바로 캐칭이다. 그는 이처럼 마음이 아름다운 선수다.
캐칭은 2003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득점(평균23.37점)과 가로채기(평균 3.37개) 부문 1위에 오르며 우리은행을 18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 올스타전 MVP는 물론 정규리그 외국인 MVP까지 휩쓸었으니 목에 힘을 줄 만도 한데 정작 그는 이처럼 딴판이다.
지난해 11월 말 캐칭과 입단계약을 맺었을 때만 해도 우리은행 관계자들은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농구캠프 때문에 개막 일정에 맞춰 올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데다 개인 매니저 자격으로 언니까지 대동하겠다는 말까지 들었기 때문.
“선수가 아니라 공주를 모시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늦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바로 연습에 참가하더라고요. 그 때부터 안심을 했죠.”
입국한 다음날인 1월6일 처음 맞대결을 벌인 팀은 테네시대 2년 선배 샤미크 홀즈클로가 뛰고 있던 국민은행. 캐칭은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8개의 전광석화 같은 가로채기 실력을 뽐내며 승리를 이끌었다.
캐칭이 보는 한국여자농구는 어떨까? “무척 빨라서 처음엔 적응이 잘 안되더라구요. 그리고 경쟁이 심한 것 같아요. 특히 조직력을 앞세운 수비가 좋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시 쓰기 말고 또 하나의 취미는 맛있는 집 찾아다니기. 특히 피자와 돼지갈비 바비큐집 얘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켠다. 통역 박경은씨는 “길눈이 밝아 나보다 음식점을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웃는다.
그는 농구 2대(代). 아버지 하비 캐칭(2m8)은 미국프로농구(NBA) 필라델피아와 뉴저지에서 센터로 10여년간 뛰었다. “어려서부터 본 것이 농구이기에 자연스럽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 캐칭의 말.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마음은 편하게’라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그는 농구를 즐기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
타고난 실력에 항상 밝고 남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캐칭이지만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2001년 오른쪽 무릎을 다쳐 두 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던 것. 그 해 인디애나 피버팀에 뽑히고도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캐칭은 “그 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래서인지 캐칭은 지금도 경기에 나설 때마다 패드가 두툼한 배구용 무릎보호대를 찬다.
캐칭의 목표는 뭘까? “우리팀을 챔피언으로 만들고 싶어요. 홀즈클로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저보고 꼭 챔피언 반지 가져오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지는 것은 싫어요.”
인생의 목표는? “대학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때문인지 나중에 구단을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운동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캐칭의 테네시대학 평균학점은 놀랍게도 4.0. 이 때문에 졸업할 때 표창장을 받기도 했단다.
그를 내년 시즌에도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캐칭은 쌩긋 웃더니 “다시 불러주면 영광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 캐칭같은 선수가 있기에 여자프로농구는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타미카 캐칭은?
△생년월일=1979년 7월21일
△체격=1m83, 75Kg
△포지션=포워드
△소속팀=우리은행, 미국프로농구(WNBA) 인디애나 피버
△출신교=테네시대 2001년 졸업
△주요성적=2003 여자프로농구 득점 1위(23.37점), 가로채기 1위(3.37개), WNBA 2002시즌 득점 2위(18.6점), 가로채기 1위(2.94), 신인왕.
△별명=미카
△존경하는 선수=알론조 모닝
△좋아하는 음식=돼지갈비 바비큐
△등번호=12(우리은행), 24(인디애나). 아버지 하비 캐칭이 현역 때 단 등번호가 42번으로 24는 이의 앞뒤가 바뀐 숫자, 12는 24의 절반.
전 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