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에서 나오는 한 장면. 할리우드 영화엔 정신질환자를 살인범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실제로 정신질환자가 폭력이나 살인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프리드먼 박사가 몇 년 전 미국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한 젊은 여자가 병원 응급실에 급히 뛰어들어왔다. 거리에서 남자친구와 말다툼을 벌이다 남자친구가 폭력을 행사하려 해 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뒤쫓아온 남자친구는 그녀를 보자마자 폭행했다.》
이 남자는 프리드먼 박사와의 상담에서 우울증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거짓으로 드러나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프리드먼 박사는 이 남자가 자신을 정신병자라고 둘러댄 데 대해 놀랐다. ‘정신질환자는 폭력을 잘 사용한다’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알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수십년 동안 사람들은 정신병과 폭력간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왔다. 영화에서 정신병 환자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도 더러 살인경향성을 갖는 것처럼 묘사되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영화 ‘사이코’에서 정신이상의 살인자로 나오는 노르만 베터스와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식인 정신과의사로 등장한 하니발 렉터 박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질환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법무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 해에 일어나는 전체 살인사건 중 정신이상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것은 고작 4.3%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질환자와 폭력간에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와 폭력간의 연관을 알아보려는 연구의 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한 정신병 환자들이 어느 정도 폭력을 사용하는지와 폭력적인 성향을 띤 사람들 중에 정신이상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에 체포, 감금되거나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대부분은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 때문에 이런 조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미국 듀크대 의대의 제프리 스완슨 박사는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폭력의 발생 빈도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보다는 정신질환자로 진단되지 않는 사람에게서 5배나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심각한 정신질환이란 정신분열증, 주요우울증, 조울증 등을 일컫는다.일반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마약 등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2∼16배 정도 더 폭력적이다. 정신질환자의 경우 알코올이나 약물을 남용하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높다.
따라서 정신질환자가 폭력을 행사했을 때는 술이나 약물이 주된 원인이 될 수 있다. 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에게 술을 억제시키면 연간 폭력 발생률이 20%에서 7%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헨리 스티먼 박사는 “정신질환자가 약물을 남용하지 않는다면 정신질환으로 진단되지 않은 사람보다 덜 폭력적이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는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을 잘 행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정신질환자가 행한 폭력사건을 분석해보면 86%가 환자와 관련 있는 사람에 대한 폭력이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일반인의 공포가 실제보다 더 큰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정신이상자를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언론 보도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신질환자가 도로에서 차를 몰고 아이들에게 돌진하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일반인들의 뇌리에는 ‘정신질환자=살인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질환자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고정관념을 뿌리깊게 형성시킨 사람은 영화 ‘사이코’를 감독한 앨프리드 히치콕이다. 히치콕 감독은 잔혹한 짓은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감히 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했다.
따라서 그의 영화를 본 일반인들은 ‘끔찍한 일은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자신들이 그런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http://www.nytimes.com/2003/03/04/health/psychology/04BEHA.html)
정리=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