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을 했다. 일할 힘이 아직 남아 있으나 제도가 그 힘을 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2030과 5060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요즈음 60대인 나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다. 아날로그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내가 디지털시대에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때도 많다.
▼일할 힘 남은 사람 많아▼
나는 어느 책에서 읽었던 근거 없는 이론 하나를 기억한다. 책과 저자의 이름도 모르고, 책 내용이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은지도 모른다. “여자의 경우 결혼을 두 번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젊었을 때에는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고, 늙었을 때에는 젊은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결혼관에 대한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위해 근거 없는 이론을 또 하나 기억해낸다. “가장 좋은 삶이 되려면, 일생 동안 직업을 세 번 이상 바꾸어야 한다“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말은 현재의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된다.
내 첫 번째 직업은 대학 교수였다. 두 번째 직업은 예술교육 행정가였다. 집에 가서 쉬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은 후 나는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 하는 신종 직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선과 색깔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말로 그리는 ‘글 그림’, 내 식으로 말하면 ‘글 화가’를 가능케 하는 자영업이다. 자영업의 성패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나는 이 벤처성 자영업에 인생을 걸 생각이다. 영업의 성패보다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일생을 두 가지 질문 때문에 고민했다. 내 갈 길을 내가 정해 내 마음대로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갈 길이 무엇인지를 안 뒤 그 길을 따라가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라는 ‘개체’와 여러 개체를 안고 있는 ‘사회’라는 ‘전체’의 개념을 놓고 개체 중심적 사고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전체 중심적 사고를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고민했다는 이야기다.
고민만 했지, 그 고민을 해결하는 대답은 찾지 못했다. 부분을 알면서 전체를 안 것인 양 떠들어대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도 내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대답은 찾지 못했다. 내 직업의 한계 때문에 대답을 찾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싶어 정치가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매번 ‘정치는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은, 은퇴라는 사회 제도적 변수와 만나게 되었다. 결국 내 직업을 내놓게 되는 처지에 놓였다. 심리적으로 당황했지만 나는 직업을 세 번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나에게 걸맞은 세 번째 직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극도로 고심했다. 내가 평생 열고 싶었던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이 나에게 손짓하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참으로 들어가기 힘든 좁은 문’이 열렸다. 개체 위주 사고와 전체 위주 사고의 허와 실이 나를 기쁘게도 했고 슬프게도 했던, 나와 너를 포함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말로 그려라. 말로 그리는 ‘말 화가’가 되라는 손짓이었다. 나를 향한 그 손짓을 보고 나는 새로 태어남의 기막히는 기쁨을 만났다. 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일할 힘이 내 속으로부터 솟아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에게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새 직업위해 ‘내가 나를 고용'▼
60대를 위한 신종 직업의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이 사회는 더욱 기름질 것이다. 숨겨둔 자기 능력과 욕망에 합당한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비록 60대지만, 마음은 언제나 20, 30대일 수 있지 않겠는가. 60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변하는 세태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2030이든 5060이든 특정 방식으로 정의되어 그 정의된 틀 속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삶의 활력’을 찾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이강숙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