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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부형권/‘문희상 사태’의 뿌리

입력 | 2003-03-09 19:19:00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달 24일 민주당에 맡긴 의원직 사퇴서가 7일 국회에 제출됨으로써 “보궐선거를 피하려고 사퇴를 늦춘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둘러싼 논란이 겨우 일단락됐다.

그러나 ‘보궐선거 회피’ 논란은 본말(本末)이 전도됐다는 느낌이다. 본질적으로 이번 사태의 뿌리엔 의원의 정부직 겸직이란 제도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5·16쿠데타 직후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개헌한 5차 개정헌법(1962년 12월 26일) 때만 해도 의원의 정부직 겸임은 ‘국회의원은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을 겸할 수 없다’는 조항에 의해 명시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때 여당인 공화당측은 69년 ‘3선 개헌’을 하면서 의원의 정부직 겸직 조항을 슬쩍 끼워 넣었다.

69년 9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이 조항이 포함된 3선 개헌안에 대해 “국민 중에는 ‘3선 개헌은 찬성하지만 국회의원의 겸직은 3권 분립을 훼손하니 절대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며 비판했다.심지어 당시 개헌안을 제안 설명한 공화당 백남억(白南檍) 의원조차 “대통령책임제에서 (의원의 정부직 겸직의) 길을 터놓는 것에 대해 이론적 시비가 있을 것”이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4일 뒤인 9월 14일 새벽 공화당은 국회 제3별관에서 이 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이후 세 차례의 헌법 개정이 더 있었지만 이 겸직 조항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그동안 대통령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에 임명됐을 때 의원직을 내놓는 것은 ‘정치적 관행’일 뿐이다. ‘문희상 사태’도 그래서 생겼다.

물론 “의원의 정부직 겸임이 책임정치 구현이나 거국내각 구성에 유용하다”는 정치권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은 대통령제의 기본인 3권 분립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특히 그 겸임 규정은 헌정사의 대표적 치욕인 3선 개헌의 ‘어두운 자식’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가 자의적 정치 관행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한 ‘제2, 제3의 문희상 사태’는 언제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부형권 정치부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