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지역포럼]한동욱/철책선 너머 '진짜 한강' 보호해야

입력 | 2003-03-10 19:12:00


올 초부터 경기 고양시 일산구 신도시 자유로 부근의 한강변 철책을 철거해야 하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산 주민들은 늘어난 차량으로 포화상태인 자유로에 뒷길을 만들어 주고 김포와 고양 파주시를 잇는 큰 다리도 여러 개 놓자는 의견을 냈으며 고양시 당국도 이에 적극 호응했다. 그러나 일찍이 ‘냉전의 산물’이라며 철책을 없애자고 주장하던 시민단체들은 오히려 이에 따른 환경파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군 당국은 안보상의 문제로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혼선이 거듭되고 있다.

자유로가 놓이기 전 한강 물이 넘쳐나던 이곳 모래톱과 무논들은 물새들의 땅이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무논을 메워 도시를 만들고 둑을 쌓아 도로를 놓으며 철책을 둘러치는 바람에 물새들은 강변 자투리땅으로 내몰려야 했다.

지금도 일산 신도시 곳곳에는 멱감던 샛강과 수로, 물웅덩이가 있다. 원래 한강 물이 자주 넘나들어 기름진 하구 평야지대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이런 습지가 많은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지금도 조금만 비가 왔다 싶으면 배후 습지에는 물이 그득 차 오르며 갈대, 줄, 부들 등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한강 하류에 생활권이 있는 서울 사람들은 한강을 프랑스의 센강이나 영국의 템스강과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진짜 한강’은 바로 일산 자유로 철책 너머에 있다.

그렇다면 원래 한강 하구의 모습은 어땠을까. 바닷물이 하루 두 번씩 드나들어 수위변화가 심해 갯벌과 모래톱이 발달했다. 물이 빠지면 곳곳의 모래톱에 새들이 앉아 깃을 다듬었다. 강가에는 칠면초 등 염생식물과 갈대, 달뿌리풀, 물억새, 줄, 부들 등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루었고 그 사이사이로 말똥게와 갯지렁이들이 갯벌을 일구면 개리, 댕기물떼새, 왜가리가 바쁘게 지나다녔다.

황조롱이는 갯버들 위에 앉아 먹이를 노리고, 흰꼬리수리와 말똥가리가 맴을 돌았다. 갯내를 풍기며 물이 들면 김포대교 밑 작은 섬 주변에서는 비오리, 흰비오리, 흰죽지, 청둥오리가 잠수를 즐겼고 민물 가마우지와 왜가리들이 한 줄로 죽 늘어서 자태를 뽐내곤 했다. 재두루미는 잠시 쉬러 강가로 나오고 곳곳의 논은 큰기러기, 쇠기러기들이 먹이를 먹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잘 발달한 갈대 군락과 갯버들 군락 사이로 고라니, 살쾡이, 너구리 등 포유동물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개발이 논의되면서 이곳 생태계에 위험이 닥치고 있는 것이다. 철책 덕분에 그나마 오순도순 살아오던 동식물들이 인간의 욕심에 다시 노출될 위기에 처했다.

한강하구는 반드시 보전해야 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한강의 ‘자존심’이다. 필자는 이곳에 무자비한 콘크리트 옹벽이나 인공구조물이 절대 들어서서는 안 되며 그 어떤 형태의 정비사업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한 정밀조사를 실시하고 물새 보호와 습지생태계 보전을 위해 민관군이 힘을 합쳐 적극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동욱 경기 어린이식물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