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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패러다임이 바뀐다]소니는 변신중

입력 | 2003-03-11 18:36:00

일본 도쿄 긴자에 있는 소니빌딩의 화려한 야경. 사진제공 소니


《일본 도쿄의 ‘명동’격인 긴자(銀座). 번화한 긴자 한복판의 소니빌딩은 일본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1층에 들어서면 대형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에서 ‘스파이더맨’ ‘맨인블랙 2’ 같은 영화들이 끊임없이 방영된다. 최근 일본에서 상영된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도 볼 수 있다.

지하 3층, 지상 8층으로 이뤄진 소니빌딩에는 TV와 디지털캠코더는 물론 소니의 히트 컴퓨터 ‘바이오’, 전문 방송장비, 휴대전화 등 소니의 최신 전자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역시 청소년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플레이스테이션(PS)Ⅱ. 전자오락실처럼 꾸며진 6층 실내에서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정신없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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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업체에서 Post IT(후기 IT)시대를 주도하는 네트워크 솔루션 업체로.’

소니빌딩만 한번 둘러봐도 TV 등 가전업체에서 네트워크업체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소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과 맨인블랙은 소니의 영화제작사인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의 최근 히트작품들. 소니가 지향하는 네트워크사업이란 한마디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계’다. 모든 전자제품 또는 단말기의 연결, 여기에 정보와 콘텐츠까지 결합시키는 야심 찬 계획이다. TV와 컴퓨터, 휴대전화 등 모든 전자기기를 연결하고 나아가 이들 전자기기를 관문으로 하여 영화 음악 금융 등의 소프트웨어를 모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계=도쿄 시나가와구의 소니 본사에서 만난 사가구치 마사노부(坂口正信) 상품기술광보(廣報)부 총괄부장은 네트워킹의 몇 가지 예를 들었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메모리스틱에 담아 컴퓨터로 옮긴 뒤 편집해 휴대전화로 다른 사람에게 전송한다. 인터넷을 통해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음악을 내려받은 뒤 미니디스크(MD)로 재생해 듣는다…. 소니가 지향하는 ‘네트워크’의 일부다.

최근 판매를 시작한 코쿤채널서버(모델명 CSV-E77) 역시 마찬가지 흐름을 보여준다.

이 서버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가 내장돼 있어 방송 수신과 100시간분의 녹화를 동시에 할 수 있다. 또 사용자가 좋아하는 44개의 키워드를 설정하면 거기에 맞춰 TV프로그램이 자동 녹화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를 입력해 놓으면 그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가 자동 녹화되고 외출 중에도 휴대전화로 외부에서 녹화할 수 있다. 사가구치 부장은 “코쿤채널서버는 TV 보는 방식을 바꿀 것”이라면서 “소니가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름 미국에서 첫선을 보이는 DVD핸디캠은 캠코더에 DVD를 넣어서 찍는다. 기존의 디지털캠코더처럼 TV나 비디오에 선을 연결할 필요 없이 바로 DVD를 넣어 녹화하는 것. PSⅡ는 비디오게임기를 인터넷서버로 업그레이드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앞으로 나올 PSⅢ의 컨셉트와 판매 시기는 극비사항.

소니는 네트워크의 중심이 될 제품을 TV, 컴퓨터, PSⅡ, 모바일기기 등 크게 4가지로 잡고 있다. 이들이 ‘소니의 세계’로 들어오는 게이트웨이(Gateway·관문) 역할을 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디지털카메라 등 다양한 제품을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전자회사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소니 회장은 최근 경영방침 설명회에서 “소니의 미래는 영화와 음악, 게임을 전자 및 가전과 결합시키는 종합엔터테인먼트기업”이라고 선언했다.

전자업체에서 ‘꿈을 파는 기업’으로의 변화는 일찍 시작됐다. 음악가이기도 한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전 회장은 1980∼90년대 미국 컬럼비아영화사와 CBS뮤직 등을 사들이면서 소니를 워크맨 제조업체에서 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게임기사업 진출도 오가 회장 때의 작품.

1995년 현 이데이 회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엔터테인먼트에 ‘디지털’이 더해졌다. 이데이 회장은 ‘디지털사업 강화’를 외쳤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IT사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즈루 오키 홍보담당 상무는 “IBM 델컴퓨터 등 쟁쟁한 업체들이 이미 세계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처음 바이오컴퓨터를 시작할 때는 비판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소니의 바이오컴퓨터는 독특한 디자인과 편리함을 무기로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디지털기기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첨가해야 한다’는 소니의 철학이 컴퓨터제품에서도 맞아떨어진 것.

오키 상무는 “만일 그때 공격적으로 IT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디지털컨버전스에 어떻게 대처했을지 아찔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전자제품의 노하우만으로는 코쿤채널서버 등 IT와 가전이 접목된 제품들에서 앞서갈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소니의 사업부는 전자, 컴퓨터엔터테인먼트(게임), 소니픽처스, 소니뮤직, 소니파이낸스(신용카드), 소니뱅크(인터넷뱅킹), 소니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등.

소니의 분야별 경영실적을 보면 디지털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서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다.

2001년 가장 많은 경상이익을 낸 것은 게임(829억엔), 영화(312억엔), 금융(221억엔), 음악(201억엔) 순이었으며 전자기기는 적자였다.

일본 도쿄 긴자의 소니빌딩 4층 쇼룸에서 관람객들이 소니의 바이오 컴퓨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 소니

소니의 매출과 수익(2001년)분야매출액(엔)경상이익(엔)전자제품5조3104억-82억게임1조37억829억음악6428억201억영화6358억312억금융서비스5122억221억기타1464억-85억


▼전세계 45공장 통합 ▼

소니는 전자제품의 생산방식에도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소니는 2001년 4월 전세계 공장 가운데 일본 11개, 해외 34개 등 모두 45개의 공장을 통합해 ㈜EMCS(Engineering Manufacturing Customer Service)라는 생산 전문회사를 출범시켰다. 소니㈜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다.

EMCS는 하나의 공장이 한 가지 제품을 만드는 기존 생산방식을 버리고 한 공장에서 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일사다예(一社多藝)’ 방식을 취했다. 즉 한 공장에서 컴퓨터, 캠코더, 메모리스틱, 디지털카메라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도록 한 것.

사가구치 부장은 EMCS의 장점에 대해 “만일 한 공장이 어떤 제품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면 그 공장에 더 많은 제품을 만들게 하는 등 공장간의 경쟁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소니는 또 생산에 셀(Cell) 방식을 도입했다. 과거에는 전자제품을 생산할 때 라인을 깔고 한 가지 제품을 양산했다. 그러나 다품목 소량 생산이 많아지고 제품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라인을 설치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돈이 많이 들게 되었다. 셀 방식은 여러 근로자가 하나의 ‘세포’를 구성해 제품 수요에 따라 셀 수를 늘리거나 줄인다. 근로자들도 단순히 한 가지 기능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가질 것을 요구받는다.

EMCS 공장들은 웬만한 부품들은 자체 생산한다. 키(Key)디바이스라 불리는 핵심 제품 몇 가지를 중심으로 이에 필요한 부품들은 자체적으로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급도 훨씬 원활해졌다. 판매점에서 주문이 들어가면 가장 가까운 공장으로 연결돼 생산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

고다테크놀로지센터는 EMCS로 통합된 후 1인당 생산액이 5800만엔에서 1억엔으로 크게 늘었다. 고다는 EMCS의 모델이 된 공장으로 공장장이었던 스가노 후지오는 능력을 인정받아 전체 EMCS 사장이 되었다.

▼세계유수기업 디지털 네트워크에 사활걸어 ▼

세계 전자업체들은 디지털 컨버전스(융복합) 시대를 앞서 가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의 선두주자 가운데 하나. 필립스는 ‘연결된 가정(Connected Home)’이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전자제품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를 맹렬히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TV, 오디오, 의료진단시스템, 반도체, 조명기기 등 다양한 사업군을 갖고 있는 필립스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팩커드 등과 제휴해 다양한 인터넷 가전들을 내놓았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내려받는 인터넷오디오, 홈시어터 등 집안의 모든 제품을 연결해 원격 제어하는 통합리모컨 ‘i-프론토’ 등이 최신 제품.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도 CD 등을 들을 수 있는 ‘몸에 입는 오디오’를 만들기 위해 나이키와도 제휴했다.

일본의 도시바도 와이어리스 브로드밴드 기술을 기반으로 한 PDA, 모바일PC, 광대역 네트워크와 홈네트워킹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도시바는 일본 냉장고와 세탁기 시장에서 2, 3위를 오르내리고 있는 데다 반도체, 모바일기기 등 전자 사업에서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최근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등에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해 외부에서 무선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페미니티’ 시리즈를 내놓았고, 홈네트워크를 위한 ‘트랜스큐브’라는 제품도 선보였다. 트랜스큐브는 TV튜너, 하드드라이브를 장착한 비디오리코더, 초고속 인터넷 연결을 통합해 TV 등의 동영상을 모바일PC로 전송할 수 있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가전 외에 항공기, 의료기기, 산업설비, 산업용 플라스틱 등으로 사업을 다양화하면서 가장 먼저 변신에 성공한 기업. 연간 전체 매출액 1500억달러 가운데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매출은 80억달러에 불과하다. 전체 수익의 50%는 금융부문에서 올리고 있다.

도쿄=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