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비뚤게 눌러 쓴 사냥 모자. 낡은 청바지에 헐렁한 재킷. 길고 가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진 담배에선 흐릿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조금은 흐트러진 자세로 인사를 건네는 차승원에게선 개봉을 앞둔 영화배우의 초조함을 엿볼 수 없었다.
28일 개봉되는 ‘선생 김봉두’로 다시 한 번 코미디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는 차승원을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카페 imA에서 만났다.
‘선생 김봉두’는 촌지를 강요하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 ‘불량 교사’가 시골 분교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학교를 폐교시키려고 아이들에게 전학을 권유하는 김봉두의 처절한 몸부림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3개월동안 강원 영월에 머물며 촬영했다.》
그가 말하는 ‘선생 김봉두’는 어떤 인물일까.
“정이 많이 가는 남자죠. 아니 뭐, 그 사람의 부도덕한 면까지 이해한다는 건 아니고.(웃음) 이 영화가 부패한 교육현장을 고발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냥 ‘거기에 이런 남자가 살았다’는 내용의 휴먼 코미디죠.”
그는 차라리 흉악범이나 장애인을 연기했더라면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설정이 뚜렷한 연기는 오히려 쉬워요. 김봉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느물느물 능구렁이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그래도 뭐 후회는 없어요. 배우들이 흔히 ‘한 번 더 한다면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또 해도 똑같아요.”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벌써 9개의 작품이 올라있다. 재벌 2세(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30대 젊은 대학강사(세기말) 증권사 브로커(자귀모) 등 그의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는 ‘번듯한’ 역을 맡았을 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01년 ‘신라의 달밤’을 시작으로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까지 ‘망가지는’ 코미디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다. 그가 세 편의 영화로 불러모은 관객만도 1000만명 가까이 된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았다. 그동안 이성재(신라의 달밤), 김승우(라이터를 켜라), 설경구(광복절 특사)가 함께 했지만 ‘선생 김봉두’에서는 철저히 혼자 웃겨야 한다.
“부담스럽기보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아 좋았어요. 좀 심심하긴 했지만. 편집과정에서 모니터를 했는데 이제 저만의 색깔이 연기에 묻어나는 것 같아 기분 좋았어요. 저 실제로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거든요.”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이제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자신 있게 내걸 만도 하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진정한 배우’의 의미에 의문을 갖는다.
“배우는 머리보다 가슴이 앞서야 해요. 자신이 ‘배우입네’하고 있는 척 뻐기는 부류를 가장 싫어하죠. 사람들이 흔히 꼽는 ‘진정한 배우’ 중 진짜 배우가 몇이나 될까요. 너무 과대평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요. 저는 그저 영화계의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을래요.”
그는 실제로 열네살난 아들을 둔 학부형이다. 교육현실에 무관심할 수만은 없을 터.
“더불어 사는 사회니까(웃음), 아들이 뒤지지 않을 만큼만 학원에 보내죠. 저 역시 ‘부패교사’를 겪어본 사람이지만 그런 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요. 아버지는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만 알려주면 돼요.”
1월에는 부인 이수진씨와 사이에서 둘째 예니를 출산하기도 했다.
“바라던 딸을 낳아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촬영이 바빠 아내한테 신경 못써줬는데 이제 점수 좀 따야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코미디 그만하고 ‘끈적끈적한’ 에로나 멜로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장난스레 묻자 “‘차승원표 코미디의 끝은 어디인가’를 보여줄 만한 작품 딱 2편만 더하고 나서”라고 답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