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粉飾會計)가 왜 이렇게 큰 문제가 되는 거죠.
“분을 발라 곱게 치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용이나 빚을 실제보다 줄이는 한편 이익과 재산 규모를 과장,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것이 분식회계입니다. 세금을 덜 내려고 이익을 줄이는 경우도 있지만, 주가를 띄우거나 회사채 금리를 낮추려고 이익을 부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회계보고서를 믿고 채권이나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자연히 피해를 보게 되지요. 더구나 한국 대기업의 이런 분식회계는 국내 주식 및 채권시장을 뒤흔들어 놓는 것은 물론, 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 경제 전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습니다.”
―분식회계 수법을 이해하기가 어렵던데….
“대표적인 수법이 팔리지 않은 물건을 ‘외상으로 팔았다’고 속이는 ‘매출채권 과다계상’입니다. 재고품을 덤핑 처분하면서도 장부에는 정상가격으로 버젓이 올리는 것도 자주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공장수리비를 영업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투자설비비에 포함시키는 것도 단골메뉴지요. 투자설비비는 7년 동안 나누어 계상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SK글로벌은 채권은행이 발행해준 채무잔액증명서를 위조, 1조1881억원에 이르는 은행 빚을 단 한 푼도 없는 것처럼 속이는 노골적이고 대담한 조작을 감행했습니다.”
―대우그룹처럼 SK그룹이 무역회사인 SK글로벌을 동원한 이유는….
“덩치가 크고 업무가 복잡해 기업 내용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은 데다 외국에 지사나 현지법인을 많이 갖고 있어 회계법인이나 감독당국의 눈을 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한국만 문제인가요.
“미국에서 2001년 말∼2002년 초에 엔론, 월드컴, 타이코, 퀘스트 등 수많은 대기업이 회계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곧이어 세계 2위의 미디어 업체인 프랑스의 비방디 유니버설의 회계조작이 폭로됐고 작년 9월에는 ‘독일의 나스닥’인 노이어 마마르크트가 소속 기업들의 회계 분식과 주가 조작으로 망가져 문을 닫았습니다. 지난달 말에는 세계 3위 소매유통업체인 네덜란드의 아홀드그룹이 최근 2년 동안 5억3700만달러나 이익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확실한 대책은 없을까요.
“외환위기 이후 회계제도가 여러모로 강화됐습니다. 많은 기업의 경영진이 분식회계로 문책과 처벌을 받았고 청운, 산동 등 2개 회계법인은 부실회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문을 닫았습니다. 또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회계법인의 감사 대상 기업에 대한 컨설팅 업무를 금지시켰습니다.
기업의 분식회계를 잡아내야 할 회계법인이 세무나 회계 처리의 자문에 응해 주는 것 자체가 회계부정과 부실감사의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업들의 투명한 회계처리가 중요합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기업 5곳 중 1곳 '회계 눈속임' ▼
회계장부를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분식회계가 국내 기업에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12일 지난해 기업들의 감사보고서에 대한 감리 결과를 집계한 결과 한 해 동안 감리를 받은 총 86개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1개사가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적발됐다.
또 86개사 가운데 금감원이 51개사를 무작위로 추출해 일반감리를 벌인 결과 15.7%에 해당하는 8개사가 분식회계로 제재를 받았다. 100개 기업을 감리하면 16개 기업 정도가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드러난 것.
특히 장부를 부풀린 것으로 의심이 가는 기업에 대해 실시하는 특별감리에서는 35개사 가운데 94.3%인 33개사가 실제로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일반감리와 특별감리를 함께 감안할 때 국내기업 5개 중 최소한 1개 정도가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적발된 분식회계 유형별로는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등에 대한 주석 미기재와 투자유가증권 평가 오류가 각각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재고자산 과다 계상 7건, 자산·부채 과다 및 과소 계상 6건, 유형자산 과다 계상 4건 등의 순이었다.
금감원은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이후 회계 제도를 개정해 감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분식회계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