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공격 전초기지인 쿠웨이트는 긴장과 평온, 기회와 위험, 귀국과 탈출이라는 이중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근저에는 인구 211만명이 경상북도 만한 면적에 사는 소국으로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세에 의존해야 하는 숙명적 이중성이 깔려 있다. 쿠웨이트는 아랍어로 ‘작은 요새’란 뜻. 16세기 초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에 성채를 건설한 데서 유래됐다. 300여년의 짧은 역사에서 쿠웨이트는 오스만투르크,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등의 침공을 받았지만 영국과 미국의 전략적 ‘요새’로 기능하면서 살아남았다. 요새는 ‘검은 황금’ 석유 위에 떠있다.
13일 대부분의 인구가 사는 수도 쿠웨이트는 평온했다. 생화학전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방독면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은 미군과 일부 서방 기자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라크와의 국경으로 가기 위해 80번 도로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자 미군 트럭과 장갑차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이들은 슈아바항에 도착, 전방으로 향하고 있는 중. 미국의 전력 증강은 계속되고 있었다. 맞은편에선 영국군의 무장차량 행렬이 지나쳤다.
쿠웨이트에서 국경의 목표지점인 알 압달리까지는 불과 100여㎞. 길 양쪽은 모두 사막이다. 도중 표지판 위에 ‘신이여 미군을 축복하소서(God Bless U.S. troops)’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곳곳에 군사공격이 임박했다는 긴박감이 감돌고 있었다. 검문이 시작됐다. 쿠웨이트군은 기자들의 국경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차의 거리측정기가 57㎞를 가리킨 지점에서 1차 검문을 통과했지만 83㎞ 지점에서 ‘통행증’이 없어 차를 돌려야 했다. 한 초병은 출입통제에 대해 사과하면서 짧은 영어로 “사담 후세인은 이제 끝났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상흔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 쿠웨이트 대학에서 만난 여대생 아이샤(18)와 달랄(18)도 “이번 전쟁은 후세인의 업보”라면서 “후세인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쿠웨이트에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 살해된 당시 32세의 여인 아스라와 쿠웨이트를 구해준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이 나란히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보복공격도 우려하고 있다. 알 무바라크 알 하마드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쿠웨이트는 참전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과 92년 체결한 상호방위지원협정에 따라 기지를 빌려주고 있을 뿐”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부 쿠웨이트인들이 전쟁을 앞두고 탈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아이샤양은 “우리 친척들은 오히려 애국심을 보여주기 위해 귀국하고 있다”며 “우리는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특별히 공포심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80만명의 쿠웨이트 국민은 가정마다 하녀와 운전기사를 두세 명씩 두고 사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대학 주차장은 마치 벤츠 승용차의 전시장처럼 E280 E240 E230 시리즈의 벤츠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달랄양도 운전기사가 모는 벤츠 E280을 타고 갔다.
그러나 이곳에 취업 중인 한 스리랑카인은 “애국심은커녕 많은 쿠웨이트인이 공항을 빠져나갔다”면서 “먹고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는 이집트 방글라데시 인도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들만이 쿠웨이트를 지키게 될 것”이라고 냉소했다.
쿠웨이트=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요르단 정무장관 인터뷰▼
압둘라 국왕의 초상화 앞에 선 모하메드 알 아드완 요르단 정무공보장관. -암만=권기태특파원
“현재 요르단은 ‘정치적 폭풍’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중동은 금세라도 불타오를 수 있는 화약고이지요. 이라크가 그렇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도 심각합니다.”
모하메드 알 아드완 요르단 정무공보장관은 12일 정부 청사에서 기자와 만나 동쪽으로는 이라크, 서쪽으로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의 아슬아슬한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걱정부터 털어놓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혈맹 관계이듯 이라크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지도 열광에 가깝다. 양측이 요르단에 어느 한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면 요르단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된다. 그는 “요르단 상황에 대해 루머와 불분명한 전망이 떠돌고 있다”며 “외국 언론이 요르단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써줘야 할 시기”라는 강조했다.
그는 “최근 알리 아부 라그헤브 요르단 총리는 ‘미국과 이라크 어느 쪽과도 사이좋게 지내기를 희망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요르단 정부의 입장에 대한 국내의 반발도 만만찮다. 요르단 최대의 야당인 이슬람 행동전선(IAF)과 종교운동단체인 무슬림 형제단(MB)은 최근 요르단을 포함한 아랍 국가들에 대해 미군을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라크에 대한 침략은 요르단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에 대한 침략이 이슬람권을 식민지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르단은 절대 미군의 공격 기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백 명의 미군이 들어와 있지만 방어용인 3대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발사대 운용법을 요르단 군인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알 아드완 장관은 “(전쟁이 발발해서) 난민들이 국경 쪽으로 몰려올 때를 대비해 국경 인근의 르웨이시아 마을 근처에 난민 캠프를 세울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이라크인들만을 위한 캠프촌과 제3국인으로 이라크에 거주하던 이들을 위한 캠프촌을 각각 마련할 것”이라며 “수만명에 이르는 난민들에게 식량과 식수 등을 공급하려면 국제적인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비(非)산유국가인 요르단은 고(故) 후세인 국왕 재임 당시인 91년 걸프전쟁 때 이라크 난민 200만명을 수용한 바 있다.
암만=권기태특파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