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개전을 눈앞에 두고 경제적 ‘지원’과 ‘보복’을 무기로 한 미국의 줄타기 외교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경제대국으로서의 ‘슈퍼 파워’를 이용, 이라크 공격에 찬성하는 국가에는 각종 경제적 혜택을, 반대하는 국가에는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
미국의 일방적 외교정책에 대한 반발과 함께 반전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요즘 미 정부는 이 같은 전략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으로부터 지원 제의나 보복 위협을 받은 나라들은 상당수에 이른다.
일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새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해온러시아의 경우 9·11테러 이후 돈독해진 미국과의 경제적 협력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13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알렉산더 버시보 주러시아 미국 대사는 최근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가 합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던 우주 탐사 및 각종 자원개발 계획 등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시 경제적 보복이 뒤따를 것임을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미군에 자국 기지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한 터키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보복이 이뤄져 미 하원은 지난주 양탄자 제조국 지원 대상에서 터키를 제외시켰다.
반면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거나, 암묵적으로 미국의 편을 들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구애 작전’은 뜨겁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미국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불가리아의 경우 지난달 미 상무부로부터 ‘시장경제(market economy)’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시장경제 지위란 한 나라의 경제활동이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해 운용되고 있음을 미국이 인정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그동안 각종 제재를 받아왔던 불가리아는 미국에 대한 수출이 자유로워져 큰 무역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안보리 이사국은 아니지만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지지 의사를 밝힌 루마니아도 조만간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받을 예정이다.
비상임이사국인 앙골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국내의 열악한 인권 및 노동 환경 등으로 인해 ‘아프리카발전 기회법령(AGOA)’으로부터 소외돼 왔던 앙골라는 조만간 AGOA의 회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미 정부 관계자들이 이번주 밝혔다. 앙골라가 안보리 표결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직후였다. AGOA는 미국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 무역공동체로 가입하면 유형 무형의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