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이라크전에 대비해 1월 12일 일본 요코스나항에서 출항하고 있다.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미국이 이라크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기지에 정박 중이던 항모 키티호크호를 걸프만에 파견한 것은 두 달 전인 1월 12일. 전운이 짙어진 이달 6일부터 키티호크호에 승선해 취재 중인 아사히신문의 이시하라 다케후미(石原剛文·36) 기자는 “전쟁이 임박하면서 함정 내부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병사들의 심적인 동요도 느껴진다”고 전했다. 10일자 아사히신문에 실린 키티호크호 승선 르포를 소개한다.》
▽긴장감 고조되는 키티호크호=걸프 일대에서 활동 중인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호에서는 이라크 남부 상공을 정찰하기 위해 출격하는 전투기의 굉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미 전투기가 이라크군의 대공포화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가 간간이 전해지면서 본격적인 전쟁을 앞둔 함내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눈앞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더니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지난주 FA18 전투기를 몰고 이라크 남부 상공을 비행했던 제이 바이남 중령(40)은 이라크군의 대공포 공격을 받고 약 30초간 기체가 포연에 휩싸이는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바그다드 남부의 북위 33도 이남은 미군과 영국군이 이라크기가 비행하지 못하도록 ‘비행금지공역’으로 설정한 곳. 걸프지역에서 활동 중인 3척의 미군 항공모함 소속 전투기들이 교대로 감시비행을 하고 있다.
70여대의 전투기를 보유한 키티호크의 경우 비행 횟수는 하루에 60∼100회. 통상 미군 조종사가 공격을 받으면 미사일로 지상의 적 방공시설을 공격할 수도 있지만 바이남 중령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무사 귀환했다”고 말했다.
이 일대에서 미군과 영국군의 비행은 작년 가을부터 늘기 시작해 매달 10여 곳의 이라크군 지대공 미사일과 레이더 등을 공격했다.
사진제공 아사히 신문
▽착잡하고 심란한 병사들=키티호크의 병사들은 1분에 1달러만 내면 가족에게 공중전화를 걸 수 있고 e메일도 보낼 수 있다. 일본에 있는 가족과 애인에게서 무사귀환을 바라는 e메일이 도착할 때마다 병사들의 마음은 심란해진다.
함내에서 홍보지를 제작하는 하사관 라이언 벨(28)은 요코스카시에 사는 아내와 하루에도 30통이 넘는 e메일을 교환한다. 반년 전 결혼해 아내가 임신 4개월째인 그는 개전 시기가 다가오면서 감정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됐는데 지금은 싸우려고 하지 않는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책은 변했다. 나 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작전 담당 앤드루 마로코 중위는 함내 TV로 CNN뉴스를 자주 시청한다. 세계 각지에서 반전시위가 벌어지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그는 “우리는 테러를 막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데…”라며 섭섭해했다. 그는 “(정치를) 고려하는 것은 군인의 몫이 아니며, 우리는 상관에게 복종해 임무를 완수할 뿐”이라고 말했다.
만재(滿載) 배수량이 8만1000t인 항모 키티호크의 높이는 61m로 13층짜리 건물과 비슷한 수준. 내부는 격납고와 병사숙소 등 18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5500명이 승선하고 있다. 하루에 1만개의 계란이 소비된다.
지난주 약혼녀에게서 ‘부상 없이 돌아오라’는 메일을 받은 한 병사는 “세계 최강의 해군에 속해 있으니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리=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