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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패러다임이 바뀐다]中 IT산업 강자 렌상의 도전

입력 | 2003-03-16 18:11:00

중국 PC 시장을 장악한 렌상이 기술 혁신과 고객 서비스 강화를 통해 세계적인 IT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렌상 PC 생산라인에서 한 근로자가 고객이 주문한 대로 만드는 주문 제작형 PC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제공 렌상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상디(上地) 정보산업단지. 칭화(淸華)대, 베이징(北京)이공대 등 중국 최고 명문대와 중국과학원 등 230여개 기술연구소가 들어선 이곳에 ‘중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정보기술(IT)기업 ‘렌상(聯想·영문명 레전드)’의 본사가 있었다.

렌상은 2001년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길에 들를 정도로 대표적인 중국 컴퓨터 제조업체. 지난 회계 연도에 27억달러의 매출을 내고 1억3400만달러의 순익을 올려 중국 5대 기업에 들었다.

본사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렌상의 제품을 선보인 전시장이 눈에 띄었다. 버튼 하나로 DVD, MP3, VCD 등을 조작하는 멀티미디어PC, 노트북PC,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 프린터, 휴대전화 PDA 등 렌상 로고를 단 다양한 IT제품이 방문객의 시선을 끌었다. 전시장은 렌상의 미래가 컴퓨터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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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제조업체에서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컴퓨터, 휴대전화, 디지털기기 등을 하나로 묶는 ‘디지털 컨버전스’ 물결은 중국에도 밀어닥치고 있었다. 중국 PC시장을 장악한 렌상은 컴퓨터 생산에서 IT서비스, 디지털기기, 이동통신 분야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0년 세계 500대 기업에 진입한다는 장기 계획도 마련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라〓중국 IT업체의 기술력은 세계 수준과 거리가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 그러나 기술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93년 중국 기업 최초로 펜티엄급 PC를 개발한 렌상은 지난해 중국 PC 시장의 27.5%를 차지해 2위 업체인 중국기업 ‘파운더’(8.9%)를 큰 차로 따돌렸다. 90년대 초반까지 중국 시장을 장악했던 미국 델(Dell)과 IBM 등 외국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렌상 등 중국업체에 밀려 20%대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기업용 서버나 중고가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중국업체의 추격을 받고 있을 정도다.

렌상은 2001년 4월 30대 젊은 최고경영자(CEO) 양위안칭(楊元慶) 총재의 취임을 계기로 기술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관련 핵심 기술을 외국업체에 의존해서는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는 것.

지난해 고성능 서버, 슈퍼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잇달아 내놨다. 8월 중국 최초로 세계 50위권에 드는 1테라플롭스급 슈퍼컴퓨터를 개발해 신화사통신에 의해 중국 10대 뉴스로 꼽힐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테라플롭스는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1초에 1조번의 수학연산을 처리하는 능력. 지난해 10월에는 서버의 주요 구성요소와 핵심 서버 칩 기술을 자체 개발한 신형 서버를 내놨다.

당시 양위안칭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고성능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외국 업체의 기술 독점을 무너뜨렸다”며 “앞으로 2∼3년 동안 기업용 컴퓨터 및 서버, IT서비스, 디지털소형 가전 사업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시장을 제패한 렌상은 세계 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유럽 시장에 잘 알려진 렌상의 마더보드 브랜드 ‘QDI’의 상표를 붙인 노트북PC를 독일, 스페인, 그리스 등 유럽 국가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로〓렌상은 컴퓨터와 디지털기기를 접목시키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컴퓨터 개발 기술이 세계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 지난해 10월 컴퓨터를 부팅하지 않고 컴퓨터에 내장된 DVD, VCD, MP3 등을 즐길 수 있는 듀얼모드 컴퓨터 2가지를 내놓았다.

류준 수석 부사장은 “PC와 디지털기기의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디지털기기를 위한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개발해 PC와 디지털기기의 통합을 실현했다”고 설명했다.

무선인터넷 기술을 통해 컴퓨터와 디지털 기기를 한데 묶는 새로운 실험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무선인터넷, 휴대전화 단말기 등 이동통신 핵심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중국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 소세코(Xoxeco)와 휴대전화 단말기 벤처회사를 세워 11월 6만5000컬러의 40화음 휴대전화를 시장에 내놨다. 중고가 휴대전화 시장 공략과 디지털 컨버전스를 대비한 이동통신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렌상은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무선인터넷 핵심 기술 개발업체와 손을 잡고 차세대 무선 인터넷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인텔, 소니, 델컴퓨터, 게이트웨이, 필립스 등 컴퓨터 및 가전업체들과 함께 IT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홈’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무선 랜으로 PC에 저장된 동영상, MP3 파일 등을 TV나 오디오로 전송하는 ‘디지털 미디어 어댑터’를 내놓은 것은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12일에는 미국 인텔사가 내놓은 차세대 무선인터넷 기술 ‘센트리노’를 장착한 노트북PC를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기업과 동시에 내놓고 무선인터넷 시대에 한발 다가섰다.

앨리스 리 부사장은 “휴대전화 단말기로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 집안의 PC, TV, 오디오는 물론 전등까지 조작하는 ‘디지털 홈’ 구축을 미래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두뇌 '렌상 신화' 주도 ▼

양위안칭 총재

렌상 신화 뒤에는 중국의 젊은 두뇌들이 있다. 중국 최고의 명문대인 칭화대, 베이징이공대, 중국과학기술대 등을 졸업한 젊은 인재들이 경영 일선에 포진해 기술개발과 경영 혁신을 이끌고 있다.

2001년 4월 창업자 류촨지(柳傳志)가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37세의 양위안칭이 신임 총재로 취임하면서 30, 40대 젊은 간부들이 대거 경영 일선에 포진했다. 렌상의 간부급 직원의 평균 연령은 33.8세. 경영 일선을 진두지휘하는 13명의 부사장급 간부도 3명의 40대 여성 간부를 빼고는 모두 30대다.

저장(浙江)성 출신의 양위안칭은 1989년 중국과학기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렌상에 입사한 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핵심 브레인. 1999년과 2001년 비즈니스위크지가 아시아의 스타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중국을 대표하는 CEO다. 그는 총재로 취임한 뒤 안정 위주의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 수익성과 기술 혁신에 바탕을 둔 사업 다각화와 고객 서비스 강화를 진두 지휘하고 있다.

양위안칭의 뒤를 이은 차세대 주자 류준(劉軍) 수석 부사장은 33세. 베이징 출신으로 칭화대를 졸업하고 1993년 렌상에 입사해 현재 가정용 컴퓨터 개발과 판매를 책임지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30대 부사장 모두가 이공계 전공자들인 것도 눈에 띄는 특징.

여성 간부 가운데도 거물이 많다. 재무담당 수석부사장인 메리 마는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뽑은 세계 최고의 여성 기업인 5위에 들었다.

렌상에 젊은 간부들이 많은 이유는 기업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철저한 능력 위주의 독특한 인사 시스템 때문. 분기별로 실적을 평가해 승진이나 급여에 반영하기 때문에 신입 사원이라도 능력을 인정받으면 초고속 승진이 가능하다. 또 중국 기업으로는 드물게 스톡옵션을 도입하고 있다.

고급 인력은 간부진뿐만이 아니다. 7230명의 직원 가운데 대졸자가 80%를 넘고 생산직 근로자를 빼면 석사 이상 학위자가 전체의 40% 정도에 이른다. 이들 고급 인력의 활약으로 2001년 한해 동안 600여건의 특허를 냈다.

▼렌상 성공전략 ▼

중국 베이징의 렌상 본사에 설치된 지능형 물류시스템. 자동화된 컨베이어벨트가 완제품 PC를 창고 밖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사진제공 렌상

렌상은 끊임없는 경영 혁신을 통해 중국 기업의 발전 모델이 되고 있다. 중국 IT산업의 ‘전설’로 불리는 렌상의 모태는 1984년 중국과학원 소속 과학자 11명이 20만 위안(약 3000만원)으로 세운 PC유통 벤처기업. 허름한 단층 건물에서 시작한 이 기업은 창업 19년 만에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렌상의 성장 전략은 세계 일류기업과 손을 잡고 기술과 경영을 배운 뒤 스스로 제품 개발에 나서는 ‘일하면서 배우는 전략’. 중국과학원의 고급 인력 지원과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성장의 큰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세계 일류 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한 렌상의 경영진은 경영 혁신과 고객 서비스 강화를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

하루 평균 1600대의 컴퓨터를 생산하는 베이징 PC생산 공장에서는 고객이 주문한 PC를 조립하는 주문제작 라인을 운용하고 있다. 고객 주문을 받아 18개팀이 하루 평균 600여대의 주문제작 PC를 조립하는 것. 덩치 큰 대기업이 중소기업처럼 주문형 조립PC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베이징 본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콜센터에는 500여명의 응답원이 하루 2만여건의 고객 문의 사항을 처리하고 있다. 응답원의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와 거울이 놓여 있다. 고객의 전화를 받으면서 자신의 표정을 거울로 확인하라는 것. PC 사용이 서툰 중국인들을 위해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경영 혁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베이징 본사의 PC생산 공장에 지능형 첨단 물류시설을 도입했다. 거대한 기계식 주차장 모양의 이 시설은 100명이 8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4명이 모니터를 보며 처리할 수 있다는 게 렌상측의 설명. 또 중국 내 600여개 대리점이 홈페이지에서 재고 물량을 확인하고 주문하는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ERP)을 도입했다. 첨단 물류시스템과 ERP시스템의 도입으로 고객의 주문을 받아 배달까지 걸리는 시간을 미국 컴퓨터업체 델(Dell) 수준인 5.7일로 줄였다.

베이징에 진출한 한 한국 업체의 관계자는 “렌상 대리점의 안내사원까지 실적 평가를 통해 급여를 받을 정도로 렌상은 철저한 자본주의 기업”이라고 말했다.

중국 PC시장 점유율 상위 5개 업체업체 2001년 2002년렌상 27.5% 26.4%파운더 8.9% 8.4%IBM 4.2% 4.8%델 3.9% 2.9%통팡 3.8% 1.5%자료:IDC, 2002년 5월 기준

2002/2003 회계연도 매출 구성구분비율(%)기업IT사업부52.31소비자IT사업부38.41이동통신기기사업1.12주문 생산사업7.96인터넷서비스사업0.20자료:렌상

베이징=박 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