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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戰雲]요르단 "실리냐…의리냐…"

입력 | 2003-03-16 19:49:00

15일 요르단 암만 수미사니언 거리에서 일어난 반미 시위. “우리 땅에 미군 주둔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암만=권기태특파원


요르단의 현 하심 왕가는 1958년까지 이라크에 존속했던 하심 왕가와 형제 가문이다. 이런 이유로 91년 걸프전 때 이라크를 지원했다가 미국으로부터 호되게 당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개전(開戰)을 눈앞에 둔 지금 ‘이라크의 형제국’ 요르단은 실리냐 의리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반미(反美)시위와 장갑차=이날 암만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는 장갑차 2대와 무장군인들이 배치되는 등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문했고, 기자들의 접근 및 촬영도 막았다.

같은 날 암만 시내 수미사니언 거리에서는 이슬람행동전선(IAF) 무슬림 형제단(MB) 등 요르단의 야당과 재야 단체들이 주도한 반미시위에 50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미군은 요르단을 떠나라” “부시는 테러리스트”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시위는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 사령관이 11일 요르단 고위 관리들을 만나 미군 증파를 허용해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미국은 터키 의회가 미군 주둔안을 거부하자 대안으로 요르단쪽을 두드리기 위해 프랭크스 사령관이 직접 나선 것이다.

현재 요르단에는 이라크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를 교육하기 위해 미군 수백명이 있다. 하지만 요르단 야당과 재야단체는 15일 “이미 3000명의 미군이 요르단 동부 사막 쪽에 들어와 있다”며 정부를 공격했다.

미국의 요르단 회유공작에 맞서 이라크도 무하메드 메디 살레 무역 장관을 암만에 보내 올리브유(油)를 대규모로 수입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그는 “미군 주둔 허용은 요르단의 국내 문제지만 양국간 형제애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는 91년 걸프전 이후 연간 550만t의 석유를 ‘절반은 무료’라는 조건으로 요르단에 제공해왔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를 지지한 데 따른 보답이다. 그러나 요르단은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승리한 이후 미국으로부터 ‘철저한 박대’를 받아왔다. 94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야 미국의 각종 제재가 풀렸다. 요르단은 이후 미국의 경제 군사 원조를 받아왔다.

▽요르단의 곡예 외교=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걸프전 당시 재임했던 아버지 후세인 전 국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3월 들어 군복을 입은 채로 미디어에 등장해 지금이 ‘전시 상황’임을 국민들에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암만 외교가에서는 요르단 언론과 정부 관리들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망명설’을 흘리는 것도 전쟁을 하지 않으려는 압둘라 2세 국왕의 ‘희망 사항’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요르단의 입장에서는 후세인 대통령의 망명은 미국과 이라크 어느 쪽에 대해서도 무난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르단은 지금 이라크에 대한 우의와 미국과 얽힌 실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암만=권기태특파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