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경제 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모호한 화법’으로 유명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2000년 12월 경제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그린스펀 의장은 “급격한 성장 둔화를 경계하고 인플레이션 부담이 줄어든 것에 주목한다”고 말했습니다. 직설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말해도 그만이지만 그는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화법은 시장에 자주 간섭하는 한국의 금융당국자뿐만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BC)의 총재마저도 이따금씩 ‘그린스펀을 배우라’는 주문을 받아야 할 정도로 그린스펀 의장의 주가를 올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던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그린스펀 의장을 다룬 저서 ‘마에스트로’에서 “그린스펀 의장은 (경제)상황이 명백하지 않거나 또는 자신의 의견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게 좋은 상황에서 배배 꼬인 화법과 모호한 메시지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였던 그의 아버지는 이 밖에도 어린 그린스펀 의장이 경제에 관심을 갖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경제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린스펀 의장이 어린 시절의 금융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작년 말 출간된 ‘행복한 부자들의 돈버는 습관’에서 저자 홍성민씨는 ‘자수성가한 부자 부모의 함정’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자녀가 의사나 박사 같은 전문가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과 달리 전문지식까지 갖추면 자녀들은 쉽게 완벽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그러나 이들의 자녀는 부모의 가장 훌륭한 자산인 기업가적 자질은 물려받지 못한 채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성향만 갖게 되기 쉽다.”
사실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부모에게서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너무 늦게 퇴근하는 아빠가 그리웠던 어린 딸이 출근하는 아빠를 붙잡고 “오늘은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꼭 깨워달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단지 아빠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지요. 이 말을 들은 아빠는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 바로 사직서를 냅니다.
1996년 미국의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의 경험을 한국의 아빠들은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지 않나요.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