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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세이]박용우/'살빼기 단기코스' 믿지 마세요

입력 | 2003-03-17 18:50:00


“이 약을 먹어도 별 탈이 없을까요?”

처방전을 받아든 환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신문 방송을 통해 비만클리닉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들을 과잉 처방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환자는 불안하다.

여기서 아주 기초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비만은 질병인가. 고혈압은 아무 증상이 없지만 그대로 두면 뇌중풍이나 심장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약물치료를 한다. 비만 역시 방치하면 당뇨병과 심장병으로 진행된다. 그뿐인가. 비만은 그 자체로도 여러 증상을 보인다. 요통, 무릎관절통은 물론이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피로가 온다. 혈압과 혈당이 올라가고 통풍 담석이 잘 생긴다. 스트레스와 우울증도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다이어트와 운동 대신 식욕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나 신경전달 물질에 눈을 돌려 섭식행동을 조절하는 기전을 밝혀 내고 있다. 식사행동을 조절하는 신호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비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비만은 의지력이 약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에너지 조절기능이 깨져서 생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관점이다.

요즘 병의원은 물론 한의원, 다이어트센터, 단식원, 뷰티센터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비만치료가 가히 봇물 터지듯 이뤄지고 있다. 비만치료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비만이 질병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단순히 체중만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이 올라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해열제만 투여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일까. 열이 오른 원인이 폐렴 때문인지, 결핵 때문인지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 다시 열이 오르지 않는다. 비만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뚱뚱했는지, 체내 지방분포가 어떤지, 본인의 의지로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지, 밤에 특히 많이 먹는 경향을 보이는지 등을 꼼꼼히 찾아 맞춤처방을 해야 근원적 치료가 된다.

그동안 비만을 난치병이라 생각하고 치료에 소극적이던 의사들이 요즘 비만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약물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거대 제약회사들이 앞다투어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니 앞으로 비만도 얼마든지 약물로 치료가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약물치료는 걸음마 단계다. 환자에 대한 정확한 평가없이 10여가지 의 약을 남용하는 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장기 사용 승인을 받은 제니칼과 리덕틸만 처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비만의 병태생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편견이다.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비만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단기간에 살을 확실히 빼준다는 비만클리닉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런 곳에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치료는 설 땅을 잃고 만다. 둘째, 아무리 ‘불안’하더라도 의사를 찾는 것이 안전하다. 비만은 원인을 찾아 근본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이니까.

박용우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