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 미국으로 이민 간 여동생이 얼마 전 전화를 했다. 우리 집 다섯살 막내와 일주일 차이로 태어난 조카가 옆집 미국 아이와 잘 어울려 놀더니 어느 날 양말을 신겨주니까 한다는 소리가 “음, 휠 베더(Feel better)!”라고 버터에 굴린 영어를 하더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조카도 학교 독서클럽에 가입했다고 자랑하는 여동생에게선 이민을 잘 결정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여동생네는 요즘 흔한 교육이민 가정이다. 사업 부진도 한 이유이긴 했지만, 한국에서 끝도 없이 퍼부어야 할 영어 교육비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민이 낫다는 것이 여동생의 주장이다.
중산층 이상만 되면 너나없이 조기유학에 교육이민까지 생각하는 상황이니 아이 있는 집이면 다들 영어에 목을 맨다. 엄마들이 직접 영어를 가르치고 뱃속의 아기에게까지 영어테이프를 들려주는 열정은 이미 상식이 됐다.
얼마 전부터는 영어로 공부하고 노는 ‘영어환경’을 제공해준다는 영어유치원이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 강남의 유명 영어유치원들은 등록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나. 우리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 일과표에도 일주일에 두 시간씩 영어가 들어 있다. 이 나이에 영어가 무리인지, 시간이 충분치 못해서인지 그저 엄마 마음 안심시키는 수준이다.
어떤 이들은 일찍 영어를 배우면 발음이 좋아지고, 뇌의 모국어 영역에서 영어를 배우게 된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너무 일찍 영어를 배우면 모국어 습득 기능마저 해치고 스트레스로 뇌기능이 위축된다고 한다. 엄마들이 무슨 언어전문가도 아니고, 도대체 몇 살부터 가르쳐야 된다는 소린지. 애들 가르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영어 하나만 갖고도 이렇게 정신 차리기가 어려워서야.
가끔 이웃의 젊은 새내기 엄마들은 지금 중1인 우리 큰애 영어교육은 어떻게 시켰느냐고 경험을 물어온다.
우리 큰애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영어 사교육은 해본 일이 없다. 영어 사교육에 전전하며 돈을 쓰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해외경험을 쌓자고 결심했다. 큰아이는 본인 용돈까지 함께 모아 호주여행을 했고 미국 이모집에도 몇 달 머물면서 값진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요즘은 영어공부를 무지 열심히 하고 있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필요만큼 좋은 스승이 없다. 그래서 우리 막내에 대해서도 조금은 느긋한 입장이다.
얼마 전 가족들이 식당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서 영어가 들려왔다. 우리 막내, 눈이 동그래졌다. “어, 영어로 말하네!” 에구, 기특해라. 영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쳐 봐?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