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쿠웨이트 북부 사막 곳곳에서 모래 기둥이 일었다. 봄 사막의 악명 높은 모래 바람이 아니었다. 갑자기 분주해진 탱크와 트럭 헬기가 일으키는 먼지바람이었다. 어디선가 발진한 전투기들은 이라크 쪽인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미국 육군 보병들에게는 실탄 30발이 든 탄창이 7개씩 지급됐고 미 해병들은 한번 뜯으면 45일밖에 사용할 수 없는 화생방복의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고향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이제 남은 것은 수류탄 지급뿐이다. 뭉친 화장지를 테이프로 감아 사막에서 하던 축구도 멈췄다.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에 대비, 참호를 더 깊게 파고 군장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종군기자 피터 베이커에 따르면 미 육군 보병 3사단의 한 병사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쿠웨이트에 도착한 이 부대는 거의 6개월간 사막에서 전투를 준비해왔다. 지난 3개월 동안에는 이미 완비된 전투태세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큰 문제였다. 그들에게 최대의 적은 이라크군이 아닌 기다림이었다.
캠프 커맨도에 배치된 미 해병 개리 허긴스 하사(20)는 “걱정은 되지만 하루빨리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베이커 기자는 전했다.
미 제1해병원정군사령관인 제임스 콘웨이 중장은 대부분 처음 전투를 치르게 되는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수천 명의 해병을 집합시킨 뒤 “해병은 이 바닥에서 가장 나쁜 자식이라는 명성을 받고 있다”며 명성대로 용맹스럽게 싸워달라고 주문했다.
쿠웨이트 북부 사막에는 이라크를 포위한 22만5000명의 미군 중 절반이 넘는 14만명이 포진해 있다.
미군의 주요 진격 루트는 쿠웨이트시에서 이라크로 곧바로 북상하는 80번 고속도로. 90년 이라크군도 이 도로를 따라 남하해 쿠웨이트를 사흘 만에 점령했을 만큼 양국을 잇는 대동맥이다. 미군은 이 도로를 따라 길 양쪽에 높이 1.5m, 폭 3m의 방호벽을 쌓았다. 총연장 100여㎞에 이르는 이 방호벽은 비무장지대 코앞에서 끝난다. 이는 미군이 이라크와의 국경 후방 5㎞까지 배치돼 있으며 공격개시 명령이 내려질 경우 불과 수분 만에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뜻한다.
전쟁이 임박했지만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북부 유전지대에는 석유채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80번 도로 북단에는 채굴한 원유를 집유장까지 나르는 집유관이 모세혈관처럼 뻗어있었다. 동행한 SK건설의 조성환 지사장은 “저 집유관이 바로 90년 이라크의 침공을 낳았던 원유 분쟁의 도화선”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에는 막대한 양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문제는 지대가 낮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의 원유까지 빨아들일 수 있다는 점. 이라크는 쿠웨이트와의 원유 도적질 중지 요구 협상이 결렬된 다음날 바로 침공했다. 왕복 6차선인 80번 도로 가운데에는 새로 가로등이 설치됐다.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향해 송유관들이 최소한 5㎞가량 줄지어 매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전쟁 준비, 다른 한편에서는 이라크 진출을 위한 송유관 공사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미군은 이라크 남부 거점 도시 바스라에 설치할 임시 사령부의 가구와 집기를 이미 발주했다. 그 분량은 쿠웨이트의 한해 가구 수요보다 많다.
전투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전쟁은 실행되고 있다.
쿠웨이트 북부 사막=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