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 임박하면서 주요국들은 전쟁이 미칠 경제적 파장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미국이 17일 이라크에 대해 최후통첩을 함에 따라 전쟁의 불투명성이 다소 해소됐다는 판단으로 주가가 일단 상승세를 보였으나 전쟁 자체가 각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통된 인식.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 러시아 등 주요국의 엇갈린 이해득실을 조명해본다. 》
▼美 달러화 반짝상승에 그칠듯▼
“전쟁 없이 이라크 사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전쟁이 날 수밖에 없다면 세계경제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빨리 끝나야 한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WB) 총재는 “무엇보다 유전이 파괴되지 않을지 우려된다”며 기업 투자 지연이나 소비자 지출 감소 등 전쟁의 영향은 전쟁 기간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전쟁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에드워드 그램리치 이사는 최근 한 연설에서 “이라크 전쟁의 영향은 예측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최후통첩을 한 17일 뉴욕시장에서는 주가와 달러가치가 오르는 등 전쟁 조기종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리만 브러더스 은행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 경제의 더딘 회복세로 달러화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만 브러더스의 투자전략가들은 이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투자자 모임에서 달러화가 올 연말까지 유로당 1.15달러, 달러당 120엔까지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은행의 프란체스카 포나사리 외환 분석가는 “미국은 대규모 적자에 성장 전망도 좋지 않아 금리가 0.5%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일단 전쟁이 끝나면 달러화가 일시 상승하겠지만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앨리스 리브린 전 미 연준 부의장은 최근 국제 투자가들이 금융시장을 떠날 것을 크게 우려했다. 특히 전쟁이 장기화되면 전쟁비용이 늘어나 재정적자가 커지고 국제금융시장의 동요와 국제유가 상승이 세계경제를 짓누르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는 것. 케네스 애로, 로런스 클라인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들은 “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리더십과 자원은 우선 국내 경제문제를 푸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들은 군사부문에 우선순위를 둘 경우 기술부문의 회복이 더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日 원유수입의 90%가 중동産▼
일본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면 무엇보다 원유 수급에 비상이 걸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비산유국으로서 과거 두 차례의 오일쇼크 때 심각한 충격을 받은 악몽을 아직도 떨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
또 10년 이상 침체를 겪고 있는 경제 전체가 한차례 더 심한 ‘몸살’을 앓을 것으로 본다. 최근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맴도는 도쿄증시 닛케이평균주가가 더욱 곤두박질치고 수출 부진마저 겹치면 ‘3월 위기설’이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금융권이 막대한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욱 막바지에 몰릴 것이라는 전망.
석유수급 면에서 보면 일본은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데 이중 90%가 중동산이다. 80년 제2차 오일쇼크 때에 비하면 유가가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중동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공격이 3∼4주간에 끝나 유가가 곧 평상 수준으로 떨어질 것을 기대한다. 걸프전 때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이 증산을 해 유가가 곧 회복됐다.
현재 일본의 비축원유는 한달 정도면 바닥이 난다. 이런 점 때문에 현재 37달러 수준인 미 서부텍사스중질유 가격은 50달러 수준까지 육박할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걸프전 때 최고는 41달러였던 데 비해 더욱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라크공격이 시작되면 주식시장 침체의 골도 더욱 깊어져 현재 8,000엔을 오르내리는 닛케이평균주가가 7,000엔대로 떨어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많다. 개인투자가들도 주식을 팔고 금 사재기 등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유럽국가들 "경제도 바닥인데…"▼
그렇지 않아도 둔화하고 있는 유럽 경제가 전쟁까지 겹치면 큰 악영향을 받을 것이며,장기화할 경우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보고서는 “이라크 전쟁이 안 일어난다 해도 유럽 경제에 미치는 성장 제고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전 여부와 관계없이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주요 경제주체들이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규모 경제인 독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최근 당초의 1%에서 0.4%로 낮춰졌다. 지난해 독일의 GDP 성장률은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0.2%. 지난달 실업자수도 470만6000명으로 2차대전 이후 세 번째로 많다. 프랑스도 올해 성장률을 당초 목표인 2.5%에서 1.5% 내외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으며, 영국도 2.5% 안팎의 낮은 성장이 예상된다.
호주의 캔버라 국제경제연구소는 유럽은 이라크 전쟁이 1년 이내의 교전과 점령의 단기 시나리오로 갈 경우 1570억달러(약 188조4000억원), 5년간의 교전 및 점령과 이후 5년의 복구사업 등 장기 시나리오 갈 경우 7480억달러(약 897조6000억원)의 비용 부담을 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연합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쟁이 길어져 오일쇼크가 장기화하면 소비자와 기업의 신뢰가 와해돼 유럽이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탈리아 경제인 연합회 카를로 드 베네데티 부회장은 “이라크 전쟁이 며칠, 몇 주만에 끝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며 “이 전쟁은 전 세계 이슬람권의 분노를 일으켜 세계 경제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中 리스크 적어 外資 몰릴수도▼
중국도 이라크 전쟁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중국은 석유 수입국이면서도 산유국이어서 유가가 급등하더라도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타격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1년 기준으로 하루 504만배럴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다. 이중 75%를 자급하고 나머지 25%만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나 최근의 유가 강세가 부담은 분명하다.
현재 중국경제는 정부의 내수 진작과 재정 확대 정책으로 고도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 7% 내외의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1400억달러가 넘는 풍부한 외환보유고도 중국 경제의 안정을 떠받치는 주요 요소.
외국인 직접투자가 여전히 늘어나고 있어 자본시장의 위축이라는 부정적 그림자는 드리우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히려 타 리스크 국가를 피해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몰려드는 외자로 인해 자본시장은 더욱 풍부해지는 ‘반사이익’까지도 예상 가능하다.
또 중국의 위안화 환율은 달러화에 고정돼 있어 이라크 전쟁으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 위안화도 동반 약세를 보여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물론 이는 전쟁이 단기 속결전으로 끝나거나 외교적 해결로 마무리될 때의 전망이다. 3개월 이상 장기화돼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 치솟고 세계경제가 급격히 위축될 경우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하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석유 비축 물량이 2∼3주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전쟁이 장기화되면 전 세계적 공급 부족으로 중국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러, 이라크 투자-채권 많아 고민▼
‘이라크 위기’로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러시아는 전쟁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호재가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 때문.
부총리를 지낸 보리스 넴초프 우파연합(SPS) 당수는 최근 이라크 전쟁이 러시아에 줄 득실을 분석한 언론 기고에서 “역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이며 석유가 전체 수출에서 40%를 차지하는 러시아는 이라크 사태로 막대한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6일 중앙은행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의 외환·금 보유고는 2월 말 현재 531억달러로 지난 3달 동안 11.3%나 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재 배럴당 40달러에 육박하는 국제유가에는 전쟁에 대한 우려가 선(先)반영돼 있기 때문에 추가 인상 가능성이 적고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한 후 본격적인 석유 개발에 나설 경우 국제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점을 계산에 넣고 있다.
러시아도 전쟁이 일어나면 잃어버릴 것이 더 많다. 러시아는 1차 걸프전 이후 이라크 유전개발과 기간시설 건설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또 80억∼90억달러 규모의 대(對)이라크 채권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런 채권과 투자를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도 고민거리다. 러시아가 끝까지 미국의 대이라크 군사행동에 반대해 미국과의 관계가 냉각될 경우 받게 될 경제적 불이익 때문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주장해 온 러시아에 대해 무역제재 철폐 계획을 재검토하고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원도 철회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