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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戰 카운트다운]외국인 근로자들 "돈없어 못떠나"

입력 | 2003-03-19 18:58:00


전쟁은 사회적 경제적 차이를 극대화한다.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 전진기지 쿠웨이트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로 양분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쿠웨이트 국제공항에는 전쟁을 피해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미국 영국인 등 서방인들과 쿠웨이트 국민들이다. 쿠웨이트에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없었다. 구별하는 한가지 방법은 이슬람의 전통 의상 ‘비스타샤’와 두건 ‘고트라’. 백인이 아니면서 ‘비스타샤’와 ‘고트라’ 차림을 한 사람은 쿠웨이트인들이다. 이들은 수개월 전에 구입해놓은 비행기표를 계속 연장해오다 전쟁 직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탈출은 고사하고 이곳의 기본적인 안전장비인 방독면을 구입할 형편도 안 된다. 쿠웨이트의 인구는 지난해말 현재 242만명으로 14일 발표됐다. 이중 쿠웨이트 국민은 37.1%인 89만8000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52만명이 외국인이다. 노동인구로 보면 쿠웨이트 국민의 비중은 더욱 적어 19.5%밖에 안 된다. 외국인들이 쿠웨이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참정권은 귀화한 지 30년이 지났거나 1920년 이후 이곳에서 거주했거나 당시 부친의 연령이 21세였던 사람에 한해 부여한다. 그러나 전란의 위기에도 쿠웨이트가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중에는 이집트(30만) 인도(20만) 방글라데시(15만) 스리랑카(10만) 필리핀(6만명)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집트와 인도인들은 중간관리자층이다.

필리핀 대사관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못한 자국민들이 고국의 가족들과 인터넷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설치한 컴퓨터 앞에 필리핀인들이 모여있다. -쿠웨이트=김동주특파원

스리랑카인 바흐라(34)는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운전기사로 일하는 그의 한달 수입은 35만원 가량. 방독면(현지 시가 45만원)은 물론 없다. 쿠웨이트 어느 식당을 가도 손님은 없고 외국인 종업원만 득실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나라의 대사관들도 아직 탈출을 권유하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 대사관의 레네와카 서기관은 “아직 떠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황이 심각해지면 몰라도 지금은 탈출을 권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대사관도 상황은 비슷했다.

바야니 만지빈 필리핀 대사는 “필리핀인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지만 해외 근로자들의 직업 안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6만명의 필리핀인이 떠나면 쿠웨이트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 때문에 출국할 수 없는 사정을 감안, 필리핀 대사관측은 자국민에게 인터넷 화상 전화로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2분에 한해 안부를 전할 수 있도록 무료통화 서비스를 개통했다.

▼요르단, 피란 이라크인 상대 돈벌이 몰두▼

요르단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인 루웨이샤에서 사막 군복을 입은 미군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전쟁이 임박하고 사람들이 몰려들 것으로 보이자 돈벌이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루웨이샤에는 이미 요르단의 국적기 항공사인 로열 요르단이 바그다드에서 빠져나온 외교관과 기자 사업가 등을 상대로 암만발 비행기표를 팔고 있었다. 이미 지나온 아즈라크는 요르단 암만과 사우디로 길이 갈리는 요충이었는데, 한 음식점에서 20여개의 간이 텐트를 쳐놓고 막 이라크를 빠져나온 이들을 받고 있었다.

요르단 국경 검문소와 이라크 국경 검문소 사이의 약 1.5㎞ 되는 구간에는 ‘임시 난민 대기소’가 마련됐다.

쿠웨이트=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암만=권기태특파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