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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테마여행]독일 로맨틱 가도

입력 | 2003-03-20 18:02:00

로맨틱가도가 시작되는 뷔르츠부르크의 풍경. 마인강을 끼고 도시가 좌우로 펼쳐져 있다.사진제공 권기왕


나라마다 뛰어난 관광루트가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가든 루트(Garden Route)란 이름의 여행코스가 있고 호주엔 그레이트 오션 로드라는 이름의 바다를 끼고 달리는 멋진 드라이브 길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동해를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를 꼽을 만하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이야기와 역사가 담긴 고성과 마을, 유적을 돌아보면서 여행할 수 있는 여행길로는 독일의 로맨틱 가도만큼 유명한 곳도 없을 듯 싶다. 특히 독일엔 지역별 특색을 담은 테마형 가도들이 많아 그 길 하나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테마여행이 된다.

● 로마로 가는 중세의 길, 로맨틱 가도

로맨틱 가도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곳에 있는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된다. 그 끝은 알프스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도시 퓌센이다. 약 350㎞에 이르는 이 가도는 기점과 종점을 거꾸로 훑으며 돌아봐도 멋지다. 원래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이어지는 거리였기 때문에 로만티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오래된 성벽이 인상적인 딩켈스뷜과 도나우강, 아우크스부르크 등이 가는 길에 들러볼 중요한 장소들이다. 동화 속 고성을 연상케하는 사연많은 성들이 길을 따라 즐비하다. 이 길을 이용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은 유로버스(독일어로는 오이로파 부스·Europa bus)지만 여건이 허락되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다. 유로버스를 이용할 경우, 각각의 정차 장소에서 일정 시간 외엔 관광이 허용되지 않지만 렌터카로는 여유있게 명소들을 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맨틱가도의 종착지인 퓌센의 대표적인 상징물 노이슈반슈타인성. 디즈니랜드의 모델이다.사진제공 권기왕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도시는 여행자들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할 만큼 아름답다. 오렌지색 지붕과 뾰족한 탑들이 시선을 끌고, 반질반질한 돌을 깔아놓은 골목길은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과 멋스러운 철제 간판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꾸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면서 21세기의 첨단 문명을 즐기고 있기에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로맨틱 가도를 따라 이동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한결같이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다.

우선 출발 도시를 뷔르츠부르크로 한다면 6월 하순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이 도시에서는 해마다 6월이 되면 ‘모차르트 음악제’가 열린다. 장소는 레지덴츠(Residenz). 남부 독일에서 손꼽히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내부의 호화로운 장식 때문에 유명하다. 18세기 중엽에 완성된 이 궁전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계단, 황제 등으로 명명된 방들로 꾸며져 있다. 특히 음악제가 열리는 ‘황제의 방’과 ‘하얀 방’의 호화로움은 여행객들을 압도한다. 이 방의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또는 아름다운 정원의 달빛 아래서 열리는 음악제는 세계 일급 연주가들과 지휘자들의 참여로 명성이 높다.

로맨틱 가도의 또 다른 명소인 로텐부르크는 중세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도시의 기원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자유도시로 번성한 때가 17세기로 30년 전쟁 무렵이다. 역시 마르크트란 이름의 광장이 관광의 기점이다. 역사적인 건축물들도 많지만 여성 여행자들이 솔깃할 만한 ‘인형과 장난감 박물관’, 독일 최대 규모의 테디베어 상점인 ‘테디랜드’ 등이 광장과 연결되어 들러볼 만하다. 특히 18∼20세기 초에 만든 인형이나 장난감들을 빽빽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인형의 집과 철도, 마차, 학교 등의 모형도 재미있다. 독일제 수제 곰 인형을 비롯해 1000여종의 곰 인형을 살 수 있는 테디랜드는 그야말로 테디베어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곰 인형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로맨틱 가도의 마지막 지역인 퓌센은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갈 때 만나는 독일의 마지막 도시라 할 수 있다.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역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바이에른 지방의 알프스와 숲, 호수들이 만들어내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자리잡은 이 성은 바이에른 국왕인 루트비히 2세가 17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들었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를 만들 때 모델로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페라에 매료됐던 왕은 성 곳곳에 오페라의 명장면들을 벽화로 그려넣게 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백조 전설 때문에 ‘백조의 성’이란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로맨틱 가도가 끝날 때쯤이면 사람들도 몽환적인 기분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분명 대형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마치 그림 동화책을 넘기듯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비현실적인 정경들이 차례차례 나타나기 때문에 여행이 끝나서야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냉정하고 합리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인들의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심성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더욱 인상적인 길이다.

● 독일 관광의 매력적인 테마, 가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로맨틱 가도의 마을들은 종종 관광객들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마련한다. 사진은 18세기 의상으로 분장한 거리의 악사들.사진제공 권기왕

로맨틱 가도만이 아니다. 차를 갖고 여행하는 독일 관광은 모두 가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성 가도, 판타스틱 가도, 괴테 가도, 메르헨 가도, 에리카 가도…. 이름만 들어도 그 특징을 잡아낼 수 있는 이 가도들은 전부 독일의 유명 관광지를 따라 이어진다.

고성가도는 이름 그대로 중세의 고성들을 차분히 훑어볼 수 있는 지역들을 연결한 코스이다. 총 길이가 250㎞로 가도 주변에는 50여개의 고성이나 폐성이 남아있어 각 성에 얽힌 사연과 비사를 듣는 재미가 각별하다. 만하임부터 고성과 대학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네카어 계곡의 도시와 마을을 지나 로텐부르크, 뉘른베르크, 그리고 국경을 넘어 체코의 프라하까지 연결된다. 이 중 하이델베르크는 괴테가 시정 넘치는 연가를 헌사한 곳으로도 유명한 예술의 도시이다.

판타스틱 가도는 ‘검은 숲’이란 별명을 지닌 슈바르츠발트 지방의 온천 휴양지 바덴바덴에서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까지 약 300㎞에 달하는 거리를 말한다. 숲과 고성, 그리고 호반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특히 이 가도를 따라 이동하다 만나는 바덴바덴은 독일 최고의 온천휴양지로 로마제국의 카라칼라 황제도 온천 치료를 하러 왔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대개 3주일간 진행되는 온천휴양 프로그램의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급 사교장과 카지노를 포함한 완벽한 오락시설이 갖춰져 있고 최고급 휴양지답게 세계 일류 브랜드숍들이 즐비해 그 나름의 쇼핑메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여행 중에 들르는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최고의 자동차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자동차의 역사를 정리해놓은 벤츠 박물관과 경기용 자동차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포르셰 박물관 등 자동차와 관련된 정보들을 완벽히 얻을 수 있는 자동차 테마여행지이기도 해서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와 사랑’의 작품 무대인 마리아브론 수도원도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한편 괴테가도는 동서 독일의 통일도시 베를린에서 출발, 괴테의 탄생지인 프랑크푸르트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괴테가 생의 약 50년을 보낸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옛 동독의 튀링겐 지방이 이 길의 하이라이트. 튀링겐은 ‘독일 문화의 원천’이란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다. 바흐가 탄생한 아이제나흐, 루터가 독일어 성서 번역을 완성한 바르트부르크 성도 이 곳에 있다.

한편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그림형제의 작품 배경이 된 도시들을 엮은 메르헨(동화) 가도도 빼놓을 수 없다. ‘빨간 모자’의 알스펠트,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브레멘, ‘피리부는 사나이’의 야외극을 구경할 수 있는 하멜른, ‘장미 공주의 성’이 있는 자바부르크 성, 그림형제 박물관이 있는 카젤 등이 핵심코스다. 이 중에서도 메르헨 가도의 기점이 되는 도시 하나우가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이다. 그림 형제의 고향인 이곳에는 야곱과 빌헬름의 동상이 있고 삽화를 그렸던 막내동생 루트비히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독일에서 제일 먼저 여름을 맞는 것은 에리카 가도다. 적자색의 에리카 꽃은 뤼네부르거 하이데지방의 상징으로 해마다 8∼9월에 흐드러지게 핀다. ‘꽃과 녹음과 물’로 넘치는 뤼네부르크를 비롯, 음악과 인연이 깊은 도시들이 연결된다. 바흐의 뤼베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세계에서 제일 큰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한 슈타데, 브람스의 고향이자 활동지였던 함부르크가 관광코스에 포함된다. 에리카 가도의 마지막 도시는 박람회와 견본시장(Messe)으로 유명한 하노버이다.

●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독일로 가는 직항편은 매일 출발편이 있다. 대한항공(2656-2000)과 아시아나 항공(1588-8000) 루프트한자 항공(3420-0400)이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연결된다. 소요 시간은 약 11시간50분 정도. 독일내 국내선 연결편은 루프트한자 항공이 편리하다.

2. 각 명소의 관람정보

뷔르츠부르크의 레지덴츠는 4월에서 9월까지는 매주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개장한다. 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 그 외 시기에는 개장 시간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월요일은 휴관하고 입장료는 어른이 5유로이다. 로텐부르크의 인형과 장난감 박물관은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한다. 입장료는 어른이 4유로이다.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은 4월에서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개장하고, 그 외 시기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다. 가이드 투어로 견학할 수 있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관광시즌엔 한두 시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입장객들이 많다. 입장료는 어른이 8유로. 퓌센역에서 성으로 가는 마차를 이용하면 더욱 낭만적이다.

3. 여행상품

현재 로맨틱 가도를 중심으로 한 독일 일주상품은 7박8일 기준, 1인당 229만원 정도이다. 원여행클럽(wontc.com), 현대드림투어(tour.e-hyundai.com)

4. 기타

독일 관광에 관한 일반정보는 독일 관광청 (www.germany-tourism.de)과 독일문화원(www.goethe.de/os/seo/, 02-754-9831), 루프트한자 항공사(www.lufthansa-korea.com, 3420-0402)에서 얻을 수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