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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피플]"웃기지, 웃기잖아" 괴짜감독 장준환

입력 | 2003-03-20 18:31:00


“지구인인가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지만,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준환 감독(33)에게 이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든다.

“?…. 아 예, 화성 쪽에서 왔습니다만, 어디서 오셨어요?(웃음)”

‘그가 과연 지구인일까’를 의심하게 되는 건 영화 속에 있는 무한한 상상력 때문이다.

‘내가 아직 지구인으로 보이니?’ 감독의 황당한 상상력에 경이로움을 갖게 되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 사진제공 싸이더스

병구(신하균)라는 이름의 한 ‘또라이’는 유제화학 강만식 사장(백윤식)이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안드로메다 출신 외계인이라 믿는다. 강 사장은 안드로메다 왕자와 유일하게 텔레파시가 통하는 ‘로열 분체 교감 유전자’를 갖고 있다. 병구는 개기월식 전 왕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구에 엄청난 재앙이 올 것이라 생각해 강 사장을 납치한 뒤 온갖 고문을 하며 왕자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종용한다.

# “저 사실은 외계인예요”

병구는 강 사장의 머리카락이 외계인과 교신하는 안테나라며 모두 깎아버리고(영화배우 디카프리오를 반대하는 ‘안티 디카프리오’ 사이트에서 ‘디카프리오가 앞머리를 내리는 이유는 외계인과의 교신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때수건’으로 발등의 살갗을 벗겨낸 뒤 물파스를 바른다. 여기서 물파스는 외계인의 신경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특효약이다.

영화는 이런 황당한 발상으로 가득하다. ‘정상인’의 발상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지구가 위험해 보였어요. 사람들이 모두 병들어 있잖아요. 지구를 제3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외계인을 등장시킨 것이죠. 망상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그의 기이한 발상은 예견된 것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인 그는 졸업 작품인 단편 영화 ‘2001 이매진’에서 자신이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 한 청년의 상상력을 담았다.

“병구는 ‘2001 이매진’의 주인공과 연장선상에 있죠. 그런 강박과 뒤틀림을 갖게 된 것도 이 세계 안에서 이뤄진 것이고, 그 사람을 파고 들어가 보면 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병구의 삶은 병든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렸을 때 광원인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구타했고, 학창 시절엔 동급생에게 린치를 당하고 수업료를 내지 못해 담임교사에게 매를 맞았다. 공장에 다닐 땐 노동운동을 하던 여자친구가 경찰에 매맞아 숨지고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병으로 몇 년째 식물인간이다.

“‘맞고 자랐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웃음). 영화 ‘미저리’를 보면 케시 베이츠에게 동정심을 느끼기 어렵잖아요. 주인공의 기이한 행동에 설득력을 주고 싶었어요.”

이 영화에는 ‘미저리’를 포함해 ‘블레이드 러너’ ‘길’ ‘2002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20여 작품을 패러디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장 감독은 “재미있어서”라고 간단하게 이유를 말했다.

‘지구를 지켜라’는 ‘범 우주적 코믹 잔혹극’이다. 병구가 강 사장을 고문하는 장면은 가히 엽기적이다. 사람고기로 개밥을 요리해 주기도 한다.

“사실 저 잔인한 영화 잘 못 봐요. 하지만 관객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었어요. 저 자신도 좀 분열적이죠. 정신분석을 받아봐야 할거나….”

이 영화의 웃음의 코드는 예측을 깨는 상상력이다. 강 사장이 사투 끝에 병구를 기절시킨 뒤 화풀이로 병구의 가슴을 걷어찬 것이 병구를 다시 깨어나게 한다든지, 강 사장이 가까스로 손에 넣은 총에서 장난감 총알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술자리에서 농담하면 대부분 성공하는 편이거든요? 그냥 내가 재미있으면 남들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영화 속 상황은 어이없기 짝이 없는데 주인공들은 너무 진지하잖아요. 촬영 중에도 스태프들이 모니터 뒤에서 웃음을 참느라 거의 질식했죠.”

# ‘미저리’등 20여편 패러디

이 영화에는 ‘키치(kitsch·값싸고 조잡한 복제품)적’ 영상이 가득하다. 강 사장의 고문의자가 전형적인 예. 이발소 의자 밑에 좌변기를 설치하고 옆에는 치과병원 의자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도구들이 팔처럼 뻗어 있다. 강 사장은 검정과 붉은 색이 섞인 현란한 무늬의 광택 소재 팬티에 여성복 상의를 입고 목에는 개목걸이를 두른 채 그 위에 앉아 있다.

미대 지망생이었던 그는(부모가 반대해 성균관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병구의 복잡한 외계인 스케치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여기에 영화 전편에 음악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가미돼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체 일부분에 ‘털이 나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수십 번 봐도 통쾌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러나 보고 난 뒤 눈물짓게 하는 그런 영화. 울다가 웃으면…, 아시죠?”(웃음)

영화는 4월 4일 개봉한다. 18세 이상 관람가.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영화평론가들의 촌평▼

○관객의 감정을 마구 습격하는 괴이한 코미디.★★★☆(김영진)

○독창적인 퓨전 장르로 담아낸 어두우면서도 엉뚱한 상상력. ★★★★(주유신)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기발하고 엽기적인 데뷔작. 이런 영화를 기다렸다. ★★★★☆(김봉석)

○지구의 현실을 우주적인 상상력으로 끌어올린 엽기적인 힘. ★★★★(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