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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경제이야기]‘갱스 오브 뉴욕’&‘로드 투 퍼디션'

입력 | 2003-03-21 17:17:00

영화 '갱스 오브 뉴욕'(위)-로드 투 퍼디션(아래)


◇ 아일랜드 노동자들 저항사 ‘영상기록’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가 올해로 100년을 채웠다. 미국에서는 각종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국내 신문 방송들도 이런저런 특집기사와 프로그램들을 내보내고 있다. 최초의 미국 이민자들은 100년 전인 1903년 1월13일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에 내린 102명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건 말이 이민이지 노예생활에 가까웠다. 작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 묘사된 초기 하와이 이민의 실상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하지만 눈물과 고통의 이민사가 한국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말도 안 통하고 인종도 다른 동양계여서 더했을 수 있겠지만 남의 동네 가서 터를 닦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백인들도 고난을 겪은 건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한 길을 걸었던 유럽의 이민자들을 꼽는다면 아일랜드인들일 것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아일랜드인의 미국 이민은 역사가 짧다. 그러니 일찍 정착한 영국이나 네덜란드 이민자들의 텃세에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인의 미국 이민이 활발해진 건 19세기 중반 이후다. 이들을 신대륙으로 내몬 건 한국인보다 더한 궁핍이었다. 당시 아일랜드 전역에 감자 전염병이 돌아 100만여명이 기아와 병으로 죽었다. 지금의 아일랜드 인구가 400만명이 안 되니 당시의 기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신대륙 미국으로 떠났다. 그 수가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인 150여만 명이었다. 그 중에는 케네디가의 선조도 있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곳곳으로 흩어졌지만 많이 정착한 곳 중 하나는 역시 뉴욕이었다. 맨몸으로 시작한 이민생활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그들의 최대 자산은 강인한 민족성이었다. 지난해 월드컵 때 아일랜드 팀의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감탄했을 것이다. 영국에 수십년째 항전하고 있는 북아일랜드인들의 불굴의 기질에서 엿보이듯 자존심도 강하다. 그러니 앞선 정착민들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1863년 뉴욕에서 발생한 큰 폭동이 그 하나다. ‘드래프트 폭동’이라고 불린 이 사건은 남북전쟁 중에 빈곤층에게 불리한 징병법에 반대해 일어난 일이다. 이때 폭동을 주도한 이들이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들이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중에 원제를 그대로 살린 ‘갱스 오브 뉴욕’이라는 작품이 있다. 1860년대의 뉴욕이 배경인데 바로 드래프트 폭동이 일어난 그 즈음이다. 영화가 초점을 맞춘 곳은 맨해튼의 파이브 포인츠란 지역이다. 이곳은 당시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도박과 살인 매춘 등의 범죄가 만연했다. 기근을 피해 온 아일랜드 이주민들은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일랜드인의 대대적인 이주는 파이브 포인츠에 사는 ‘정통 뉴요커’들을 자극했다. 그들 역시 이민자(의 후예)였지만 새로운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침입자라 여기며 적대시한다. 결국 두 집단의 갈등은 전쟁을 불러오게 된다.

제목처럼 영화는 갱들간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로 아일랜드인들의 저항사는 역사적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다. 남북전쟁 때부터 전쟁 후까지 펜실베이니아주 탄광지대에서도 아일랜드계 미국 노동자들은 태업과 테러 등을 벌인다.

가난한 뒷골목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쉽게 빠져드는 것이 바로 갱 집단이다. 미국 마피아의 뿌리는 바로 이민온 가난한 젊은이들이었고 아일랜드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개봉된 ‘로드 투 퍼디션’은 대공황시대를 배경으로 시카고 지역의 마피아 조직을 다룬다. 우리는 마피아 하면 영화 ‘대부’처럼 이태리계만 떠올리지만 당시 시카고 갱단은 이태리계와 아일랜드계로 나뉘어 있었다. ‘로드 투 퍼디션’이 바로 이 아일랜드계 갱단의 얘기였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