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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새로 쓴 일본사'…한반도관련 日학설 오류 지적

입력 | 2003-03-21 17:47:00

요코하마에서 바라본 일본의 상징 후지산 동아일보 자료사진


◇새로 쓴 일본사/아사오 나오히로(朝眉直弘) 외 지음 이계황 등 옮김/640쪽 2만2000원 창작과비평사

일본인 학자들이 최근 쓴 정통 일본통사. 도쿄소겐사(東京創元社)에서 2000년 5월 발행한 ‘요설 일본역사(要說 日本歷史)’를 번역한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지 않은 일본사 관련서들은 대부분 ‘한 권으로 읽는∼’ ‘며칠 만에 읽는∼’유의 제목을 달았거나 서구인들이 집필한 것으로 주관적 선택의 성격이 강했다. 일본에 대한 광범위한 독자층의 관심을 반영한 결과이긴 하지만 다이제스트식의 단편적 접근과 서구적 시각의 편향성 우려를 낳았다.

일반 독자에게 권할 만한, 또 대학강의에도 합당한 책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에서 나온 이 책은 일본열도의 탄생에서부터 최근 버블경제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전체 역사를 한권에 담았다.

보통 수십권에서 100권 이상 시리즈로 출간되는 일본의 통사 출간 흐름과 비교하면 ‘새롭고도 이채로운’ 시도다. 즉 무엇이 중요한지조차 헤아리기 힘든 정보의 범람을 의식해 일본사의 골격을 이루는 지식에 토대를 두고 ‘잡설(雜說)’을 다루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일본인이 아닌 우리로서는 되레 그 점이 반갑다.

이 책은 일본 학계에서 실증적으로 인정된 학설과 자료를 기본으로 삼아 시대별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에 대해서는 부정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며 광개토왕비문에 대해서도 기존 일본학계의 설에 의문을 표한다.

또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대해서도 한반도의 영향력을 인정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서술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일본의 주류입장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라 할 만큼 ‘반(反)일본’적이다.

이 책은 일본사 연구의 해당분야 전문가 17명이 한 장씩 나눠 집필했다. 각 시대와 영역에서 세부적으로 진행되는 첨단동향을 파악해 좀 더 쉽게 역사 전체의 상(像)에 다가설 수 있게 하자는 목적이다. 번역과정에도 공을 들였다. 원서의 각 부별(원시고대 중세 근세 근현대)로 해당 분야의 전공자 4명이 나눠 번역을 맡았고 수 차례 윤독과 토론작업을 거쳐 번역의 질을 높였다.

이 책의 서술상 특징으로는 일본역사의 전개를 동아시아 세계와 관련시켜 고찰하는 지역사(地域史)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 사회사와 문화사를 강조하고 있는 점, 민중의 생활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지역사적 시점을 도입함으로써 일국사(一國史) 중심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을 구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사회사와 문화사를 강조한 것은 최근 역사학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전체적인 구성과 항목은 일반 개설서와 비슷하지만, 각 시대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실을 나열하고 소개하기보다는 시대사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예컨대 이 책은 다른 통사처럼 ‘원시고대-중세-근세-근현대’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세 초기 헤이안(平安) 시대에서 가마쿠라(鎌倉)시대로 넘어올 때 복잡한 왕조의 계보보다는 양위했거나 출가한 천황이 국정을 장악하는 원정(院政)에 주목한 점, 민중의 생활상을 중심으로 중세 말의 난세를 살핀 점, 근세사회로 전환해 국민국가를 형성할 때 일본 내 시장의 역할과 흐름을 주로 서술한 점, 군국주의에 이바지한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직시한 점, 패전 후 일본의 모습을 그릴 때 한국을 비롯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부전(不戰)결의에 주목한 점 등이 그렇다.

참고문헌에는 1990년대 중후반은 물론 2000년에 발표된 자료까지 들어 있어 학문적 순발력도 보여준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