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연출가인 로메오 카스텔루치는 창조, 파괴, 죽음 사이의 긴장된 관계를 강렬한 이미지로 전달한다. 사진제공 LG아트센터
근대 과학의 창세기로 불릴 만한 사건인 ‘라듐의 발견’이 일어나는 19세기 후반 퀴리부인의 실험실, 유태인을 멸종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20세기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간 최초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카인과 아벨의 땅.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연출가인 로메오 카스텔루치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창조와 파괴와 죽음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이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는 ‘시작’에 대한 환상과 공포, 창조와 파괴 사이의 긴장, 그리고 깨지기 쉬운 아름다움 등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비언어극인 이 연극의 제목은 ‘창세기’지만 관객들이 차근차근 이해할 만한 줄거리는 없다. 카스텔루치는 관객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감정에 바로 직격탄을 가하는 듯이 충격적이고 과감한 ‘연극언어’를 구사한다. 낯설고 날카로운 소음, 섬광처럼 눈을 자극하는 조명, 시각적으로 유쾌하지 않은 장면, 난해하고 상징적인 이미지, 정식 배우가 아닌 일반인과 로봇과 동물의 등장 등 기존의 표현법을 무시한 그의 연출법은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카스텔루치는 ‘줄리어스 시저’(1997), ‘햄릿’(1992) 등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고전을 소재로 하면서도 그 고전에 담긴 주제를 잔인할 정도로 강인하게 관객들의 뇌리에 남긴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카스텔루치의 연출을 통해 우리의 뇌는 도덕이나 조화 등으로부터 일체의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미지들을 창조해낸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유럽 연극계의 ‘뉴유러피언 시어터 리얼리티즈상’,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프레미오 UBU상’, 프랑스 파리 비평가 대상 등을 수상했고,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는 2005년 프로그램의 총책임자로 카스텔루치를 지목했다.
22일까지(오후 4시). LG아트센터. 3만∼6만원. 02-2005-0114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