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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정정호/끊임없는 개선…도요타를 배우자

입력 | 2003-03-21 18:28:00


지난해 6월 도쿄에 부임하기 전까지는 솔직히 일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일본이란 나라는 ‘돈은 많지만 시름시름 앓는 늙은 환자’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일본 경제는 증세가 좀처럼 호전되기 어려운 만성병, 이른바 일본병에 걸려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재생에의 길은 멀고도 험난해 보였다.

그런 중에 도요타자동차가 기록한 엄청난 규모의 이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2003년 3월 결산에서 경상이익 규모가 1조5000억엔을 넘길 것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월초 나고야(名古屋) 근처의 도요타자동차 공장을 가보았다. 성공의 비결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도요타가 엄청난 수익을 내는 원동력은 ‘도요타식 생산방식’으로 불리는 특유의 생산 및 경영시스템이다. 이는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만큼만 생산하는 ‘저스트 인 타임’ 개념에 바탕을 둔 생산시스템이다. 또한 최적의 작업을 찾아내는 표준화와 낭비 제거, 그리고 항상 ‘왜’를 5회 반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개선 마인드도 도요타 생산방식의 핵심 요소다. 자동화공정에서도 무엇인가 이상이 발견되면 기계를 정지시켜 원인을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사람이 있는 자동화’로도 불린다.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제조원가를 줄여 생산효율을 높여가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효율을 생산성과 근사한 개념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 나라의 거시경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왜냐하면 생산성(정확하게는 총요소 생산성)은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실증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있어 노동이나 자본의 투입량보다 총요소 생산성의 기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요즘 일본 열도에서는 ‘도요타를 배우자’는 열기로 뜨겁다.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세탁소, 병원, 보험회사, 구청, 우체국 등 거의 모든 업종에서 도요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도요타의 비법을 가르치는 전문 교육연수기관이 등장해 성업 중일 정도다.

일본이 기우는 것 같아 보여도 제조업은 아직 세계 최고다. 세계 1위의 무역흑자, 외환보유액, 그리고 일본이 미국에 파는 물건(수출)은 수입의 갑절이다. 모두 제조업 경쟁력의 증거다. 미래에 대한 투자도 많아 특허권수 연구개발투자는 부동의 세계 1위이다. 4년 전 통계지만 일본에 아직도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기업이 무려 548개라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무서운 저력인 것이다.

정작 지금 일본에서는 ‘한국을 보라, 배우라’고 난리다. 공영방송 NHK가 16일 밤 한국의 은행구조조정을 한 시간이나 성공 사례로 보도했다. 일본은 무얼하느냐는 질책과 함께. 산케이신문은 18일자에 한국 저널리스트들의 일본 경제 비판을 한 페이지 특집으로 실었다. 놀라운 변화다.

하지만 솔직히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다. 과연 일본에 그렇게 찬사만 받을 정도로 우리 내실이 좋은가. 일본이 부실채권 처리가 늦어지고 금융 구조조정이 안 된다고 해서 통째로 우습게만 볼 정도인가. 일본의 엄살은 없을까, 우리 한국의 자만은 없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정정호 한국은행 일본 도쿄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