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경남 창녕 일대 상공에서 실시한 인공강우 실험 장면. 공군 수송기 안에서 요드화은을 구름 속으로 살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 텍사스주 물 관련 계획의 출발점은 우주공간이다. 지구 둘레를 도는 인공위성이 부지런히 촬영한 사진과 관련 정보들이 모이는 곳은 주도(州都)인 오스틴 연방건물 지하 텍사스 자연자원정보시스템(TNRIS)의 메인 컴퓨터. 이곳에서는 인공위성이 보낸 데이터를 토대로 주 전체 구석구석의 물과 관련된 디지털 지도를 만든다.
TNRIS의 엔지니어인 펠리시아 라이츠가 컴퓨터상의 지도에 표시된 연방건물 주변을 클릭하자 모니터에는 순식간에 초정밀 지도가 나타났다. 건물 일대 지하수의 분포, 깊이 등 물에 관한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됐다.
텍사스주는 이를 바탕으로 기간별로 수자원 개발 및 이용계획을 짜고 있다. 이렇게 가공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정부와 기업, 주민에게 모두 공개된다. 물 사용자들이 예측 가능한 물 사용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물과 첨단기술의 만남’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하이테크가 물을 만든다=물을 새로 찾고, 만들기 위한 기술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물이 얼마나 많고 적으냐는 이제 부존량에만 달린 문제가 아니다. 이를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느냐는 기술력의 싸움이 새로운 승부처가 되고 있다. 하이테크 경쟁은 기존 수자원의 활용에 그치지 않고 ‘무(無)에서 물을 만드는’ 영역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바닷물은 인간에게 수자원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닷물 속에 있는 염분을 제거하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을 하면서 바닷물은 새로운 수자원으로 바뀌고 있다. 텍사스주는 작년 3월 주지사 릭 페리가 담수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해수 담수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부 해안지역의 브라운스빌 등 7곳에 담수화 시설을 설치했거나 설치 중이다. 물이 부족한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타바버라 주민들도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어 주는 시설 덕분에 식수를 얻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한국도 담수화에 관한 한 선진국이다. 1960년대부터 담수화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제주와 경남 통영시 등의 44개 섬 지역에서 이미 담수화 시설을 가동 중이다. 대부분 수도관을 놓을 수 없는 외딴 섬 지역들이다. 제주 우도의 경우 하루 500t을 만들어 식수로 쓰고 있다.
쓸모없었던 물을 수자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해수 담수화라면 ‘없는 물을 만들어내는’ 첨단 기술이 인공강우다. 구름 속에 비의 씨앗(cloud seed)을 뿌려 인위적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 분야의 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은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주 등에서 심심찮게 인위적으로 비나 눈을 뿌려대고 있다. 노스다코다주의 파고에 있는 WMI라는 인공강우 전문회사는 61년부터 비를 만들어주는 일로 돈을 번다. 20대의 비행기를 갖추고 중서부 지역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고객은 미국 내 건조지역뿐만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와 그리스 등 외국으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한국도 95년 이래 지금까지 기상청 기상연구소 주관으로 모두 8차례에 걸쳐 지상 및 항공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했다. 특히 기상청은 2000년 한국-러시아 기상협력 공동실무회의에서 러시아의 ‘안개소산기술’을 이전받기로 했으나 아직 진전은 없는 상태.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담수화 공정이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다.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 있는 애시켈론 담수 공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경제성=물을 바꾸든 또는 만들든, 문제는 돈이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경제성이 없으면 소용없기 때문. 미국과 호주 등에서 인공강우사업이 성행하는 것은 물 1t을 얻는 데 드는 비용이 0.3∼1.3센트로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해수 담수화 시설이 꼭 필요한 시기에만 가동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담수화 시설에서 얻는 물 값은 현재 일반 상수도 요금의 3∼5배. t당 1000∼3000원인 생산비는 대부분 전력 요금이다.
캘리포니아주수자원국(DWR)의 파우지 카라제 박사는 “50년대부터 캘리포니아주는 바닷물을 끌어오는 것으로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수십 년의 경험으로 그런 방안은 경제적 효율성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인공강우도 따지고 보면 완전히 물을 새로 만들어내는 건 아니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DWR의 정일환 박사는 “인공강우도 하늘의 구름이라는 재료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다른 지역의 물을 끌어다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있는 자원 효율화하는 게 최선=캘리포니아주 농경지 곳곳에는 괴상한 모양의 안테나가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시미스(CIMIS)’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관개용수 시스템의 일종. 온도와 습도, 비 올 확률은 물론 태양열의 강도까지 측정해 그날 얼마나 물을 줘야 할지를 알려준다.
주 전역의 140여 곳에 설치된 시미스 안테나가 모은 정보는 모뎀을 통해 주 정부의 자료분석센터로 전송된다. 자료분석센터는 이 정보를 분석해서 다시 농민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1분 단위까지 세분화해 물 주는 양을 분석한다.
95년 조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활용한 이후 곡물 생산량은 23% 증가했지만 물 사용량은 10∼20% 줄었다. 설치비용이 5000달러(약 600만원)지만 10배 이상의 수익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게 주 정부의 계산.
시미스의 성공사례는 상수도 누수율이 14%를 넘고 있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물에 관한 한 ‘기적’은 없으며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물 사용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오스틴=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한국 구름량 충분 인공비 여건 좋아 과감한 투자 절실"▼
한국의 대체 수자원 개발은 가능성이 풍부한 분야다. 기상청에서는 95년부터 인공강우실험연구에 들어가 이후 몇 차례에 걸쳐 항공 및 지상실험을 실시했다.
2001년 6월에 경남 서부지역과 경북 북부지역, 2002년 3월에 경남 합천과 의령지역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해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다.
인공강우의 실용화를 위해서는 구름의 종류, 생성시기, 두께, 함수량(수분을 함유한 양), 온도 등에 대한 분석자료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실험 및 연구를 통한 기술과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한국은 중위도 편서풍대에 있어 주 1회 정도 기압골이 통과할 때 구름양이 많아 인공강우 실험에는 비교적 좋은 환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계절별 기상특성에 대한 자료수집과 최적 실험조건 분석, 관측장비의 확보 및 지속적인 연구개발 등 장기적인 안목에서 과감한 투자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여건에 맞는 인공강우 실용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해수 담수화의 경제성은 기존 상수도보다는 떨어진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제조방법 및 운영기술 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점차 경제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술과 함께 수자원 관리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싶다. 과학적 통합관리로 물 배분의 효율을 높여 물을 새로 만드는 효과를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분산적 수자원 관리와는 다른 개념이다. 즉 수량 수질환경 생태의 통합 조정관리를 비롯해 유역 내 수자원과 인접 토지자원, 지표수와 지하수의 통합관리를 말한다.
이러한 통합 관리를 통해서만 국가와 지역경제 전 분야에 걸친 물 이용자들간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수자원의 통합관리 기술기반 마련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도 다목적댐 운영을 중심으로 한 유역 또는 범유역 단위의 한국형 통합 물관리 기반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고익환 수자원연구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