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엔 계절이 다른 곳보다 한 박자 빨리 찾아오죠. 꽃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먼저 느낍니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꽃집 ‘헬레나’를 찾은 디자이너 지춘희씨는 꽃들에 둘러싸여 보랏빛 수국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헬레나에는 이제 프리지어와 튤립이 차츰 자취를 감추고 나풀나풀한 리시안샤스와 탐스러운 수국, 작약 등이 가득하다.
헬레나는 최근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생긴 ‘브랜드 꽃집’의 대표주자. 대담하게 서로 다른 종류와 색깔의 꽃을 ‘믹스 앤드 매치(mix and match)’하고 포장은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살려 소박하게 하는 ‘명품 꽃다발’로 강남 여성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다.
지씨가 추천하는 봄꽃은 수국과 작약. 크고 풍성해 한 송이만 있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약간 ‘시골스러운’ 느낌의 맨드라미나 작은 들꽃도 좋아한다.
“그냥 집에서 쓰는 물컵에 수국을 꽂아서 식탁이나 화장대에 놓아보세요.”
특별한 날에 호사스러운 꽃 장식을 하기보다는 한 송이라도 항상 가까운 곳에 꽃을 두고 생활하는 게 지씨의 ‘꽃 사랑법’이다.
봄에는 흔한 개나리나 진달래 목련 등을 유리병에 꽂아 놓으면 집안 분위기가 특별한 것처럼 바뀐다.
옆에 있던 헬레나의 플로리스트 유승재 실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꽃은 애정을 가지는 만큼 오래갑니다. 물을 자주 갈아주고 건조하지 않게 환기를 잘 해 주면 꽃을 더 오래 볼 수 있어요.”
꽃은 그에게 작품에 대한 영감(靈感)을 주기도 한다. 단순한 선을 통해 여성스러움을 표현하기로 정평이 난 그의 작품은 그 색감이나 무늬에 꽃을 담고 있다.
수국의 색만 해도 단순하지 않다. 파랑 분홍 보라 초록 등의 수국도 있지만 그를 매료시키는 것은 파랑에 보라색, 초록에 분홍색이 섞인 풍성한 색감의 수국.
“유럽을 여행할 때 꽃시장을 찾아다니며 수국을 카메라에 담았죠. 그리곤 호텔 로 돌아와서 파스텔로 종일 수국의 색을 표현해 봤어요. 그 색을 옷에 반영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시장을 찾아 싱싱한 꽃을 사온다. 흰색과 분홍색, 진한 자줏빛의 작약을 묶어 만든 꽃다발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20대 후반에 그의 브랜드 ‘미스지 컬렉션’을 만들었고, 이후 20년이 됐다니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침 운동을 하다 만나는 노란 개나리 숲을 보며 기뻐하고 목련이 하얗게 떨어지는 모습에 슬퍼하는 그는 여전히 ‘10대 소녀’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