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주주들은 지금 SK㈜ 등 SK그룹 관계사들이 SK글로벌에 대해 어떤 경영판단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다. ‘도와줄 것인가, 모른 체할 것인가, 도와준다면 어떻게….’ 궁극적으론 부실 계열사를 억지로 끌고 가는 재벌의 구태(舊態)를 경계하는 것이다. SK㈜가 독자적인 경영판단을 내리면, ‘재벌식 선단(船團)경영이 마무리되고 독립경영이 자리잡았다’는 해석이 나올 법하다. 현재 SK글로벌 채권단에서는 계열사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대주주로서 책임을 져 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주주와 시장은 “계열사의 동반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유한(有限)책임’이라는 주식회사의 취지로 볼 때도 ‘주주기업 책임론’은 말이 안 된다는 반론.》
▽‘너는 너, 나는 나’=SK글로벌 지원요청에 대해 최대주주인 SK㈜의 공식입장은 ‘제한적으로 OK’다. SK㈜는 SK글로벌이 팔려고 내놓은 주유소 매각과 관련해 “모두 사들일 수는 없다. 수익성 높은 것만 골라서 사겠다”고 밝혔다.
한 투자자문사 K사장은 “혹시 SK글로벌이 주유소 값을 시세보다 높게 받겠다고 요구한다면 곤란하다”면서 “부동산 고가 매입은 전형적인 계열사 퍼주기 수법”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의 지원요청에 대해서도 SK㈜의 입장은 단호하다. SK㈜ 주주와 채권자의 권익에 반해 SK글로벌을 지원할 계획이 없으며 증자참여와 채권 출자전환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 SK㈜ 노동조합도 성명을 통해 “SK그룹의 문어발식 기업확장, 불투명한 경영으로 그룹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며 계열분리 후 독자경영을 요구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주유소를 매입한다면 실사를 통해 가격산정을 정확하게 해야 주주들의 동의를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구태(舊態)도=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는 17일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보유한 현대차지분 1.71%(375만4755주)를 1380억원에 전량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에 현대모비스 주주들은 반발했다. 2만3600원(14일 종가)에 불과한 현대차 주식을 무려 주당 3만6750원에 매입, 회사재산을 축냈다는 주장이다. 현대모비스 주가는 당일 9%가량 급락했다.
회사측은 “현대차의 최대주주로서 현대차 지분안정을 위해 추가 지분매입이 불가피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신용카드사의 부실문제는 무분별한 투자가 나중에 얼마나 큰 부담으로 되돌아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현대자동차 LG증권 등 신용카드사 대주주들은 당장 수천억원대의 카드사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
메릴린치증권 이원기 전무는 “카드사의 부실이 만만치 않아 출자기업에 상당한 짐이 될 것”이라며 “출자역할을 도맡아 한 주력기업에 ‘증자부담’이라는 불똥이 튄 셈”이라고 말했다.
▽독립경영 요원한가=현대상선은 한때 무차입경영을 꿈꿀 정도로 잘 나갔다. 그러나 현대건설에 이어 지주회사 역할을 떠맡아 부실 계열사 지원과 대북(對北) 사업에 동원되면서 만신창이가 돼 결국 관리종목으로 추락했다. 현대상선 김충식(金忠植) 전 사장은 부실 계열사 지원요구에 반발하다 2001년 10월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오너 중심의 재벌구조에서 전문경영인의 존재는 미미할 따름이다.
메릴린치증권 이 전무는 “독립경영에 대한 요구는 시대적 흐름이나 한국적 기업현실에선 그룹총수(오너)의 ‘허락이나 묵인’이 있어야 독립경영이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상호지급보증 해소로 위험 이전의 가능성이 줄어든 가운데 출자규제로 계열사간 연결고리가 느슨해지고 국내외 투자자들의 경영감시도 강화되면서 독립경영의 여건은 한층 좋아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두터워진 시장감시와 노무현 정부의 개혁의지를 감안할 때 SK사태 이후 대주주의 재량권이 줄어들 것이며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 추세가 점차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 김주영 소장(변호사)은 “선단식 경영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버릴 것(부실 계열사)을 버려야 좋은 기업이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