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아니, 아니다! 우철은 단박에 부정하고 눈을 감았다. 질투가 아니다! 두근, 두근, 두근! 질투일 리가 없다. 두근, 두근!
때는 1931년 11월 조선 신궁 대회,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겨울이었다. 나는 1만m와 5000m에 출전했다. 1만m에서는 2위였는데 5000m에서는 4위,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5000m에서는 평안남도 대표 변용환(邊龍煥)이 우승을 차지했다. 변과는 몇 번 겨룬 적이 있는데, 준우승을 한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하얀 면셔츠와 바지에 작업화 차림으로 표창대에 오르는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표창장을 받아들고 단상에서 내려와 변용환 옆에 나란히 섰다. 준우승을 했는데 마치 꼴찌라도 한 것처럼 이를 악물고 있었다.
키는 5척 5촌, 몸무게는 14관쯤 나갈까. 허벅지는 전후좌우 갑옷 같은 근육으로 탄탄한데 무릎 아래는 날렵한 것이 한눈에 잘 단련된 다리임을 알 수 있었다. 속도가 빨라지면 허리 높이가 다소 높아지고 지면을 세게 차는 탓에 상하 운동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는 허리의 탄력을 이용하여 보폭을 넓게 유지하고, 팔을 이용하여 상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있었다. 아주 힘찬데도 차분하고 조용한 주법. 팔도 다리도 진자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땅과 발이 마치 자석에 들러붙어 있는 것처럼 몸이 오르내리지 않았다. 대체 어떤 식으로 연습한 것일까.
“차렷! 천황폐하께 배례!”
대회위원장이 호령하자, 운동장에 있는 선수들은 일제히 일장기를 우러러보며 배례를 했다.
“본 대회에 출전한 제군들은 평소에 단련한 실력을 발휘하여 황국민의 의기와 힘을 선양하고, 본 대회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 나라를 위해 경하해 마지 않음이라.”
대회위원장이 표창대에서 내려오자, “이것으로 폐회식을 종료하겠습니다”란 목소리가 메가폰을 타고 울렸다.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대표고?
평안북도.
내는 경상남도 대표다.
어째 사투리가 심하다 했지.
니야말로 북쪽 사투리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평안북도 어디고?
만주하고 국경, 압록강 근처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