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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슈]국가인권위 '反戰성명' 채택과정과 파장

입력 | 2003-03-26 19:25:00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 방침과 정면 배치되는 반전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면서 인권위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청와대측은 일단 인권위의 반전 의견을 ‘다양한 의사표현’ 수준으로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국가기구인 인권위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추진해 온 이라크 파병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의견표명 경위=인권위 내에서 반전 의견이 공식화된 것은 이달 24일. 유시춘 상임위원(소설가)이 전원위원회에서 “미국-이라크전쟁에 대한 인권위의 명확한 입장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이어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59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가한 20여개국 인권단체들이 이라크전 반대의견을 내놓자 인권위의 반전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먼저 인권위 직원 30여명이 25일 전쟁과 파병 반대에 서명했으며 인권위도 같은 날 5차례에 걸쳐 간부회의를 열어 논의를 거듭한 뒤 26일 오전 최고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에서 반전의견서를 최종 채택했다.

26일 열린 긴급 전원위원회에는 위원 9명 가운데 7명이 참석했으며 유시춘 박경서(전 인권대사·이상 상임) 정강자(전 여성민우회 공동대표) 김덕현(전 여성변호사회 회장) 신동운 위원(전 서울대 법대 교수·이상 비상임) 등 5명이 반전의견 표명을 지지했다. 유현(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상임) 김오섭 위원(변호사·비상임)은 이를 반대했다. 김창국 위원장은 외부에서 전화로 반전의견 표명을 지지하는 의사를 밝혔다.

▽타당성 논란=참석자들은 “1시간여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말했다. 일단 큰 흐름은 ‘전쟁 반대’로 가닥을 잡았으나 정부가 추진 중인 파병문제에 대한 조율 때문이었다. 결국 인권위는 ‘이라크와 관련된 사안(파병문제 등)을 반전 평화 인권의 대원칙에 입각해 접근해야 한다’는 완곡한 수사를 사용해 정부와 충돌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을 남겼다.

반전의견서 채택을 주도한 유시춘 위원은 “많은 고민을 했지만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 5조를 생각해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현 위원은 “국가인권위법 4조에 따르면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한해 적용한다’는 문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전은) 한마디로 인권위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며, 정부가 ‘국익’을 이유로 참전의사를 밝힌 마당에 정부기구인 인권위가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각계 전문가 의견=인권위가 국외(미국과 이라크) 문제에 의견을 표명한 것을 두고 외부의 논란도 잇따르고 있다.

이화여대 김석준(金錫俊·행정학) 교수는 “인권위는 정부기구라는 ‘법률적인 해석’과 외부 영입 인사들이 많은 독립적 기구라는 ‘희망적인 해석’이 병존한다”며 “그러나 이번 경우는 법률적 해석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대통령과 정부의 파병안에 대해 국가기구인 인권위가 반대하고 나선 ‘정부 내 의견 불일치(Institutional Pluralism)’는 통치에 대한 도전”이라며 “이는 국가 기강마저 혼란스럽게 만들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김우상(金宇祥·정치외교학)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필요하지만 이미 대통령이 국익을 고려해 국회에 파병안을 상정해 놓은 상태에서 국가기구가 반대의견을 내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반면 참여연대의 이태호 정책실장은 “이것은 파병에 대한 여론 수렴 없이 파병안을 처리하려는 국가에 대해 인권을 대변하는 기구가 제동을 건 것으로 환영한다”며 “인권위의 의견으로 인해 정부는 선택의 여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