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나운서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 프리랜서 선언한 것을 후회하지 않나요?”
영화배우로 데뷔한 요즘 자주 받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왜 직장을 그만두고 연기를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더구나 아나운서로 ‘잘 나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아뇨, 전혀. 자유롭고 좋은 걸요. 오히려 3, 4년 정도 먼저 프리랜서를 선언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를 가끔 해요”라는 식으로 단호한 편이다. 만약 대학시절부터 연기를 했더라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조차 있다.
▼배우 데뷔 늦었지만 좋은 선택 ▼
처음 내가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저 외도나 호기심 때문이라고 짐작하거나 화제를 만들어 주목받아 보려 한 쇼맨십쯤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 아나운서가 되기 전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여성 아나운서는 인기 직업이다. 여대생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직업으로 꼽히고 있으며 지성 미모 교양에 말솜씨까지 공인받는 셈이니 그야말로 이 시대 인텔리 여성의 대표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나운서로 대접받으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했던 스무살에 연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용기가 없었다. 집안에서 그토록 반대하는데 그 뜻을 거역하면서 연기를 할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대신 나의 욕구와 부모님의 바람의 중간점인 아나운서를 택했고,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으며, 힘들게 아나운서가 된 후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보는 사람들은 내가 아나운서가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잘 맞춰 생활했을’ 뿐이다.
아나운서를 하는 동안 늘 마음이 괴로웠다.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이 불편했다. 가슴속에서는 활활 타오르기를 원하는 불씨가 있는데 그것을 애써 감추며 살고 있었으니 가슴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나운서로 있는 7년여 동안 상사에게 개인 의견 한번 피력해보지 못한 것은 물론, 눈치 보느라 휴가 한번 제대로 가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의기소침한 조직원이었다. 게다가 아나운서란 직업은 이성을 앞세우고 감성을 억제해야 하니, 세월이 갈수록 기뻐도 좋아하지 못하고 슬퍼도 울지 않는 감정불감증의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2년 전 중대 결단을 내린 것이다.
나를 ‘최초의 아나운서 출신 영화배우’로 만들어준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촬영하면서 신선했던 것은 방송에서는 카메라(기계)의 워킹에 맞춰 사람(인물)의 운신의 폭이 결정되는데 영화에서는 배우의 움직임에 카메라가 따라준다는 점이었다. 마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인간 대우를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아나운서는 주어진 원고에 충실해야 하고 짜여진 틀에 맞춰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데, 배우는 나름대로 분석한 시나리오와 인물의 감정에 따라 다양하게 연기할 수 있으니 여간 자유로운 게 아니었다. 처음 촬영장에서 감독님께서 “(연기)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말했을 때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아나운서를 안해 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가슴속 불씨 이제야 살아나 ▼
나는 ‘신인 연기자’다. 하지만 내 근본은 아나운서에 있으니 방송 MC로서도 꾸준히 활동하면서, 차분히 연기력을 쌓아갈 생각이다. 방송 10년차, 요즘 나는 일요일 온 가족에게 웃음을 주는 30분 분량의 ‘공포의 쿵쿵따’(KBS2 TV)를 만들기 위해 녹화현장에서 6시간가량 원고 없이 거의 애드리브로만 진행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 시나리오를 기다리고 있다.
■약력 ■
△1969년생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졸업(1992년) △KBS 공채 20기 아나운서 입사(1994년) △KBS ‘뉴스광장’ ‘연예가중계’ 등 진행 △프리랜서 선언(2001년)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2003년) 출연
임성민 방송인 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