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황호택 지음/363쪽 1만2000원 한나래
톡 튀어나온 배에 단춧구멍 같은 눈, 도무지 총기(聰氣)라곤 없어 보이는 외모. 하지만 귀신 찜쪄 먹을 ‘꾀돌이’인 데다 ‘초를 쳐서’ 글 쓰는 재주를 타고났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꾀택이’ 또는 ‘황초’인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위원이다.
사회부 초년기자 시절 하늘 같은 데스크가 다소 생경한 표현을 보고 “이게 뭔 말이야?”하고 다그치자 “문장가들은 다 쓰는 말인디유…”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해 좌중을 폭소로 몰아넣는 순간을 직접 목도한 바 있고, 법조기자로 명성을 날리면서 하룻밤에 원고지 70∼80장을 막걸리 한 잔 마시듯 뚝딱 쓰는 것을 보면서 절망에 가까운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노력하는 둔재는 게으른 천재를 결코 당할 수 없다’는 말을 나는 그에게서 실감한다. 샬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부러워하듯, 연하의 신문사 2년 선배인 그이의 ‘글’을 나는 늘 질투했다. 80년대 중반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의 ‘절창(絶唱)’인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오랫동안 사건기자들의 ‘문장 경전(文章 經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글쟁이가 논설위원이란 자리에 묶여 제한된 지면에 한정된 글만을 공급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월간 ‘신동아’ 편집장이 그를 불러 와이드 인터뷰를 맡겼으니, 인기가 없을 리 없었다. 강금실 고건 고은 박세리 심대평 임권택 장상 정대철 조정래 최경주 최불암 김혜자 최인호 등이 그의 상대였다.
‘훌륭한 인터뷰이(interviewee)는 좋은 인터뷰어(interviewer)가 만든다’는 말처럼 그로부터 인터뷰를 ‘당한’ 명사들은 모두가 흡족해 했다. 찔렀지만 아프지 않았고, 귀신에 홀린 듯 가슴에 묵혀두었던 심경을 훌훌 털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신동아 500부를 구입해 지인들에게 돌린 이도 있었다.
이번에 그가 신동아에 연재된 글 가운데 ‘백미(白眉)’ 들을 엮어 단행본으로 펴낸 것을 보면서 그가 80년대 중반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획을 그은 ‘박종철군 사건’으로 2번에 걸쳐 한국기자상을 따냈을 때 “한가지 사건으로 재탕(再湯)까지 해 먹은 것이 쑥스럽다”는 소감을 피력한 것이 생각났다.
당시 그는 “상을 주어도 시원찮을 연조에 상을 받게 됐다”며 애늙은이인 척을 했는데 이번에는 책 서문에 “요즘은 거꾸로 인터뷰를 당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는 ‘속내’를 밝히고 있다.
신동아 인터뷰의 주인공은 인터뷰를 당한 이들이었으나 단행본으로 나온 인터뷰집의 주인공은 당연히 ‘황호택’일 것이다.
오명철기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