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하나만 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의사들이 흰색 가운을 벗고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유분방한 끼를 발산하고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 한의사 김소형, 정신과 전문의 표진인, 치과의사 홍지호씨. (아랫쪽부터 시계방향) 전영한기자
TV 속에 ‘엔터테이너’ 의사들이 맹활약 중이다. 이들은 건강에 대한 전문 지식을 설명해주는 전통적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발을 쓰고 연기를 하고, 몸을 던져게임을 하고, 연예인들과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입담을 자랑한다.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탤런트를 ‘탤개맨’(탤런트+개그맨)이라고 부르듯이, 연예인보다도 훨씬 자연스런 애드리브를 구사하는 이들은 ‘의개맨’이라고 불러야할 판이다.
27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건강보감’ 코너에 출연했던 미스코리아 출신 한의사 김소형씨(33),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등에서 베테랑 방송실력을 자랑하는 정신과 전문의 표진인씨(37), MBC ‘타임머신’과 KBS2 ‘야한밤에’에서 재치있는 말투를 구사하는 치과의사 홍지호씨(41)가 한자리에 모였다.
김소형=표선생은 얼굴 표정이나 말투를 보면 의사인지 모를 정도예요.
표진인=개그맨은 열 번 웃겨야 웃긴다는 소리를 듣는데, 우리는 한번만 웃겨도 ‘웃기는 의사’라는 소리를 들어요. 평소 의사들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대목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 같아요.
홍지호=저는 형수(영화배우 이미숙)를 따라 아침 토크쇼에 출연한 게 사실상 데뷔였어요. 1년6개월째 출연하는 ‘타임머신’은 처음엔 의학적 소견을 내는 패널로 참여했는데, 점점 망가지는 역할을 요구하더라고요.
방송 녹화는 일주일에 1, 2 차례. 그러나 야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촬영하는 등 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지 않은 것이 ‘방송인 의사’의 기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과연 본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김=‘건강보감’에 출연했더니 한의원으로 문의 전화가 많이 왔어요. 한방다이어트 음식과 피부질환 치료법을 다뤘는데 “그 음식 어떻게 만드느냐. 지압을 하려면 어디를 눌러야하느냐”하는 질문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처음보는 환자들도 저를 친숙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치료 과정에 도움이 됩니다.
표=정신과는 좀 달라요. 저는 식이장애, 성상담, 인지행동 치료를 하는데 TV속 이미지가 오히려 선입견으로 작용해 치료에 방해가 됩니다. 시청자들은 제가 오락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니까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주지만, 진지하게 들어줄 것 같지는 않은가 봐요.
홍=제가 치과학계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사람인데 방송에서 ‘날라리’가 됐어요. TV 출연 이후 가벼운 이미지가 중장년층에겐 오히려 역효과를 줬어요. 예전에 고승덕 변호사도 방송출연 이후 수임건수가 오히려 줄었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이 ‘저렇게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의사나 변호사는 진료비(수임료)가 얼마나 비쌀까’라며 아예 오지 않는 경우도 많죠.
그렇지만 이들은 TV에서 시청자들을 웃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표씨는 “의사 하나만 가지고는 재밌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말한다.
홍=항상 찡그린 환자를 쳐다보는 치과의사는 미국에서 자살율 1위라고 해요. 성형외과 손님은 곗돈모아 제발로 오지만, 치과는 ‘도살장 끌려오듯’ 오는 환자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치과의사들은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테니스 골프 등산 등 취미 생활을 즐깁니다. 제게 TV 출연은 본업에 충실하기 위한 일종의 ‘취미생활’입니다.
김=TV 출연을 둘러싸고 처음에는 남편하고 많이 싸웠습니다. 남편은 전문 지식이 있을 때 해야 한다며 말렸죠. 그런데 TV 출연하면서 오히려 한의학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또 ‘환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의사’라는 이미지는 제게 가장 큰 자산이 됐습니다.
▼또다른 TV속 의사들▼
한의사 이경재씨는 SBS ‘신동엽 남희석의 맨투맨’의 ‘내 맘이야’ 코너에서 사상 의학과 골상 등 한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연예인의 어머니를 알아맞추는 게임을 한다. 치과의사 김영삼씨는 KBS 공채 16기 개그맨으로 요즘 KBS2 ‘개그콘서트’ 중 ‘공부합시다’ 코너에 출연하고 있다. 한의사 최승씨는 KBS2 ‘세상의 아침’ 등에서 ‘댄스 다이어트’를 선보였다.
SBS ‘순간포착…’의 최낙현 PD는 “의사들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전문가 패널 중에서도 방송에 가장 잘 적응한다”며 “특히 ‘엔터테이너형’ 의사들은 전문적 지식을 친숙하게 전달해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의사들 약력▼
◇표진인
○연세대 의대 졸업(정신과 전문의)
○M&B 진 클리닉 원장
○연세대 의대 외래 강사, 이대목동병원 외래 조교수
◇김소형
○우석대 한의학과 졸업
○1993년 미스코리아 미(미스서울)
○아미케어 김소형한의원 원장
◇홍지호
○미국 펜실베니아 치대 졸업(치주·보철과 전문의)
○서울대 경희대 외래교수
○홍지호·이신정 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