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 잡기 힘든 두 마리 토끼일까요, 아니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일을 가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만나본 CEO 가운데 ‘가정이 우선’이라고 말한 분은 없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월 초 현대백화점 이병규(李丙圭) 고문을 찾아갔습니다. 작년 말 대표이사 사장에서 물러나 상근 고문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이 고문은 필리핀으로 출장을 갔더군요.
며칠 후 다시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출장이 아니라 가족여행으로 필리핀을 다녀오셨더군요. “한 8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일만 하고 살다보니 8년 동안 한번도 가족끼리 여행을 가지 못했어요. 가정에 너무 무관심했죠.”
이 고문은 가족과 외식한 게 언제인지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일에만 몰두했다는 거죠.
외국 CEO들도 일을 최우선으로 꼽았습니다. 올해 초 명품 잡화 브랜드로 손꼽히는 ‘발리’의 CEO인 마르코 프란치니 사장을 만났습니다.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잊어버렸다. 최근 취미 생활을 즐긴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보다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고 대답하더군요.
이쯤 되면 일과 가정은 두 마리 토끼인 듯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반대 주장도 있는 법.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의 저자 짐 콜린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면도기 회사 ‘질레트’의 CEO인 콜먼 모클러는 가족과 회사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 비결은 간단하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뿐이다.”
물론 인사(人事)를 잘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죠. 게다가 아랫사람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능력, ‘부하’가 확실히 믿고 따를 수 있을 만큼의 실력과 덕망을 스스로 갖추는 일이 선행돼야 하겠죠.
박형준 경제부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