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회사들이 어렵게 되자 카드회사 대주주들이 주머니를 털어 대규모 증자에 나서고 있다.
현대카드의 대주주인 현대캐피탈과 현대자동차는 30일 1800억원을 증자했다. 다른 카드사 대주주들도 증자에 참여할 전망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카드사들로부터 신고된 유상증자 예정규모가 2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증자가 자발적으로 이뤄진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카드사 부실문제를 수습하던 정부가 대주주의 팔을 비틀어 억지로 증자시킨 것이다. 사실 외환카드나 국민카드 등은 그동안 대주주가 증자 가능성을 줄기차게 부인해왔다.
이는 ‘출자한 금액만큼만 책임진다’는 주주의 유한(有限)책임 원칙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장에서도 ‘비관련 계열사에 대한 출자로 주주기업의 기업가치가 훼손됐다’는 비판이 일었고 해당기업의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금융당국이 이런 선택을 한 데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신용카드사의 경영난으로 빚어진 카드채 시장 불안을 막아야 했던 것. 당국은 카드사를 돕기 위해 수수료 및 연회비 인상, 신용공여기간 축소 등 담합을 부추기는 일을 했다. ‘카드사 부실을 일반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자 대주주 증자로 입막음을 하려 한 것. 이 때문에 정부가 정책을 편 것이 아니라 ‘카드사 대주주와 주고받기식의 거래를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대책으로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진행돼온 금융개혁 경제개혁에 대한 신뢰가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이원기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전무는 “최근 SK글로벌 분식회계, 포스코 경영진 선임에 대한 정부 개입에 이어 카드사 억지 증자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좀처럼 향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었고 사람도 교체됐지만 금융당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과다개입’ 시비에 휘말린다.
금융당국은 알아야 한다. ‘참여정부’라는 말을 ‘시장에서 벌어진 일에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것이 곧 버려야 할 관치(官治) 행태임을.
이강운 경제부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