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의 작품을 사야 할까? ‘작품성’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상당히 오랜 세월이 소요된다. 작품성에 대한 시장의 계량화된 평가를 작품값이라고 한다면 이는 사람들의 미의식의 변화에 따라 부침한다.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작품 외적인 거시적인 변수에 따라서도 작품값은 출렁인다. 작품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이런 여러 변수를 두루 헤아려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작품 가격이 작품의 내재가치(작품성)에 수렴한다고 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미의식의 변화를 한발 앞서 감지해 내는 일이다.
주식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가치주를 사 놓고 때를 기다리듯이 미술품 투자 역시 소외된 젊은 작가의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지 못해 안달하는 주식이 큰 수익을 내주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나 열광하는 미술품 역시 장기적으로 보면 매력이 줄어든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리가 3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처음에는 조롱을 받고 얼마 후 반대에 부닥치다가 결국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동서양의 위대한 작가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미술계의 버핏으로 불릴 만한 성공한 컬렉터나 화상들치고 당대의 대중이 열광하는 작품에 주목한 사람들은 없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조롱하고 대중이 외면하는 작품들을 선점하고 때가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이다.
컬렉터 층이 얇고 노회한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같은 이미 역사적인 평가가 끝난 대가들의 작품에만 쏠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런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환금성과 안정성이 보장되고 또한 그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므로 작품 값도 오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컬렉션의 묘미는 소외받는 작가의 작품으로 보다 긴 호흡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의 저자 앨런 보니스는 한 작가가 성공하는 데는 약 25년이 소요된다고 말한다.
밀레의 ‘안젤루스’가 50만프랑에 팔리던 시절에 같은 돈이면 르누아르나 모네 혹은 이보다 더 쌌던 고흐나 세잔의 대표작들을 1000점 이상 살 수도 있었다. 지금은 당시의 비주류였던 고흐, 르누아르, 세잔, 모네의 작품들이 한 점에 수천만달러에 거래되면서 세계 미술품 경매의 리더 보드를 장식하고 있는 반면 밀레의 그림 값은 341만달러가 최고 기록으로 까마득하게 밀려나 있다.
며칠 전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박수근 화백의 ‘한일(閑日)’이 14억원에 팔렸다. 이 작품은 40여 년 전 한 미국인이 당시 보통사람 한 달치 월급 정도에 사서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요즘 이만한 금액이면 ‘미래의 박수근’이 될 수도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 수백 점은 족히 살 수 있다.
지난 1년간 성원해 주신 애독자들께, 그리고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동아일보에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서울옥션 대표이사 soonung@donga.com
▼알림 ▼
지면개편에 따라 ‘김순응의 미술과 시장’은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1년간 수고해 주신 필자와 성원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