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라크전 발발과 업종별 동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전쟁이 조기에 끝나더라도 반미 감정 확산과 미국에 대한 이슬람권의 추가 테러 위협 등 불안요인이 남아 있어 걸프전 때와 같은 달러화 강세나 주가 급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전쟁 이후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일까. 전문가들은 집값도 일반 경기와 궤를 같이 하겠지만 크게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이는 과거 걸프전이나 북핵(北核) 문제가 불거졌을 때의 시세 흐름에 기초한다.
실제 일부 중개업소들은 전쟁 발발과 함께 매물 호가(呼價)를 묻는 ‘꾼’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발빠른 투자자들이 집값이 전쟁 직전에 저점을 찍은 뒤 종전 이후 회복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택시장 내부요인이 관건〓1990년대 초 걸프전 때 집값은 오히려 큰 폭으로 올랐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이듬해 2월 미국이 개입, 이라크의 패배로 끝날 때까지 6개월간 지속됐다.
전쟁이 일어난 90년 8월 전국 주택매매가격지수(1995년 12월=100.0)는 103.4. 전쟁이 끝난 91년 2월에는 111.3이었다. 전쟁 동안 8.9포인트가 높아진 셈이다.
반면 북핵문제가 불거졌던 93∼94년 집값은 약보합세였다. 93년 3월 12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이어 94년 6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올 때까지 주택가격지수는 103.5에서 100.1로 떨어졌다.
이어 94년 10월 21일 북-미간 제네바합의 타결로 북핵 문제가 위기를 넘겼을 때의 주택가격지수는 100.3. 소폭 오르긴 했지만 뚜렷한 상승세를 감지하긴 어려웠다.
상반된 가격 동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부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은 주택시장의 특수성 때문.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는 주택공급이 부족했을 때였다. 90년 당시 전국 보급률은 72.4%에 불과했다.
집값은 정부가 밝힌 5개 신도시 조성과 주택 200만호 건립 계획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91년 8월부터 잡히기 시작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서 시장이 안정을 찾았다.
북핵 위기가 한창이던 93년과 94년에 집값이 떨어진 것도 주택 공급이 늘어난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큰 폭 변동은 없을 듯〓전쟁 기간에도 집값은 소폭이나마 상승세를 유지했다. 거래는 많지 않은 편. 대신 매도 호가(呼價)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쟁이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의 김용순 책임연구원은 “정부의 집값 안정대책과 경기 침체로 주택시장 여건은 썩 좋지 않다”며 “전쟁 뒤 주택가격이 소폭 하락하더라도 전쟁의 여파보다는 기존 악재의 영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도 “봄 이사철이 끝나가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태인 만큼 전쟁 뒤 집값이 뛸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떨어질 가능성도 낮다”며 “지금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