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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을 펼쳐라]큐레이터 되려면…

입력 | 2003-04-02 18:36:00

한 전시회에서 큐레이터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적 상황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만큼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큰 직업도 흔치 않을 것이다. 방송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그려지듯,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화랑을 돌아다니며 예술가들을 상대하는 ‘우아한’ 겉모습과 달리 강한 노동강도에 고학력 저임금의 대표 직업이기 때문이다. 대략 현장 경력 5년을 기점으로 시장에서 검증받은 큐레이터들은 봉급도 오르고 권한도 주어지지만 5년을 버티기가 힘든 게 현실. 무엇보다 채용 자체가 인맥 위주인 데다 일에서도 전문성을 갖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전시기획자’로 번역되는 큐레이터란 기획은 물론이요, 진행 홍보 마무리까지 전시에 관한 모든 일을 전담하는 직업이다. 미술 전반에 대한 미시적 거시적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를 선정하는 일부터 작품을 전시공간에 배치하는 일, 예를 들면 위치 조명 온도 습도까지 신경 써야 한다. 또 비영리재단 등이 운영하는 미술관에서는 자체 예산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펀딩’이라 불리는 외부에서 돈을 끌어오는 일도 중요 업무 중 하나다.

현재 전국 미술관과 화랑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는 줄잡아 300여명. 미술이론이나 실기를 공부한 사람들 중 전업작가로 매진하거나 학업을 계속하지 않을 경우 큐레이터는 미술계에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졸업생들이 선망하는 직종 중 하나다. 그러나 인맥 위주의 채용이 많은 데다 대부분 계약직이어서 신분이 불안정하다. 또 초봉이 연간 1000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신분이 안정되고 공무원 수준의 급여도 보장받는 전국 국공립 미술관의 큐레이터 모집 경쟁률도 100 대 1이 넘는다. 문화관광부가 매년 학예사 자격증 시험을 주최하는데 이 자격증은 말 그대로 자격증일뿐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인천 대전 등 전국의 10개 국공립 미술관들은 부정기적으로 자리가 빌 경우에만 채용한다. 일부 상업 화랑이나 미술관들은 인턴사원(6개월∼1년, 길게는 2년)으로 매년 2∼5명씩 공개 채용한 뒤 이들 중에서 정식직원을 채용한다. 외국에는 화랑이나 미술관에 소속되지 않고 전시 프로젝트별로 일을 따라가는 ‘독립 큐레이터’ 즉 프리랜서들도 많지만 우리는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전문 큐레이터들보다 교수나 평론가들이 국내외 전시 기획자로 일하는 경우도 많아 전문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큐레이터로 잔뼈가 굵으면 독립해 화랑을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한 미술관 큐레이터는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일부 대학에 개설된 큐레이터학이나 예술경영학 등을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며 “한국적 상황에서 어려운 여건인 것은 사실이나,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전시’라는 형태를 통해 작품과 관객을 만나게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직업적 보람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경영감각을 함께 가진 사람들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고 권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