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루웨이셰드 인근의 제3국인 난민촌 풍경. 텐트 사이에 걸어놓은 빨래에 피란민의 고단한 삶이 배어 있다. -루웨이셰드=박제균특파원
피란민들에게 전쟁은 똑같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어느 나라 사람에게든 마찬가지다.
1일 요르단의 이라크쪽 국경 지역 루웨이셰드 인근의 제3국인 난민촌을 찾았다. 이 난민촌에 수용돼 있는 사람들은 전쟁이 터진 뒤 이라크에서 빠져 나온 소말리아 수단 모로코 팔레스타인 출신 등. 일자리를 찾아 이라크에 갔다가 전쟁통에 난민이 된 사람들이다. 기자가 찾은 날에는 250여명이 고단한 삶을 의탁하고 있었다.
제3국인 난민촌에서 2㎞ 정도 떨어진 이라크 난민 캠프는 텅 비어 있었다. 지난달 31일 이라크를 빠져나온 70대 이라크인 부부가 있었지만 2일 딸들이 살고 있는 바레인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난민촌에서 모로코 출신 알리 자바르(61)를 만났다.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4일 전 난민촌에 왔다는 이 노인은 바그다드에 있는 아들(40)과 생이별을 했다고 했다.
―왜 아들과 함께 못 나왔나.
“우리는 바그다드 외곽에 살았다. 아들이 일하러 바그다드 시내에 들어갔다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아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나올 수는 없었나.
“전쟁이 터지고 이틀을 기다렸지만 바그다드로 들어갈 수도, 바그다드에서 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 대피 시설이 있는 바그다드보다 도시 주변이 더 위험하다고 했다.”
―어디로 갈 건가.
“모로코로는 안 돌아간다. 여기서 아들을 기다리다가 전쟁이 끝나면 바그다드로 돌아가 아들을 만날 것이다. 내 아들은 안 죽는다. 알라가 내 아들을 지켜줄 것이다.”
―(며느리에게) 바그다드에 남아 있는 남편이 걱정되지 않나.
“….”
고통도 일상사가 된 듯, 이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옆에서는 한 무리의 난민촌 젊은이들이 축구공을 차기 시작했다.
암만=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