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영화]‘심영섭의 시네마… ’ 프로이트와 함께 영화보기

입력 | 2003-04-03 18:02:00

임상심리분석가 겸 영화평론가인 심영섭씨는 이 책에서 영화를 통해 심리학의 기초 개념들을 설명한다. 사진제공 다른우리


어두운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가끔 자기 자신을 본다. 화면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갈등에 대한 해답을 구하거나 위로받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임상 심리분석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씨가 펴낸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다른우리)는 그처럼 영화를 렌즈삼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 책. 심씨가 1999년 동아일보에 ‘영화 속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모태로 태어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화를 예로 들어 복잡미묘한 감정, 언뜻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의 근원을 설명해준다. 가령 겉보기엔 유순해도 은근히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싫어하는 상사로부터 하기 싫은 서류 정리를 지시받았을 때 거절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서류를 잃어버리거나 찾지 못할 곳에 넣어두는 식이다. 저자는 이같은 ‘수동 공격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영화 ‘파이란’의 주인공 강재를 통해 분석한다. 현실을 투명하게 지각하기 힘들거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애꿎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 분노는 표현함으로써, 혹은 대중과 공유함으로써 대단히 자기 주장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또 늑대가 처음부터 늑대라고 속을 다 보여줬는데도 늑대를 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 알면서도 넘어가고 나중에 후회하는 식이다. 이처럼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생각의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엉뚱하게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인지 부조화 경향’이 무엇 때문인지도 영화 ‘나인 먼쓰’를 통해 알기 쉽게 풀어낸다.

어린이를 싫어했던 주인공 새무얼이 막상 아이가 태어나자 아동 애호가로 변모해버린 것은, 취소 불가능한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혹은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상황이 발생할 때 ‘인지 부조화 경향’이 커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 아버지의 엄지가 부러지는 꿈을 꾸었다는 내담자의 임상심리분석 사례와 영화 ‘피아노’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엄지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 등을 연관지어 엄지 절단이 상징하는 의미를 분석한 글을 읽다보면 거대한 무의식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지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프로이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쉬운 톤으로 쓰인 책이라서, 정교한 분석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을 듯하다. 삽화가 서용남씨가 그린 엉뚱하고 때로 엽기적인 그림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책의 무게를 덜어낸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