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발견/자와할랄 네루 지음/김종철 옮김/696쪽/2만5000원/우물이 있는집
깊이는 어둠에 있다. 밤이 낮보다 깊은 이유는 거기에 있다. 끝 모르는 창공이나 깊이 모르는 물 속은 푸르다 못해 검고 어두운 것도 같은 이유다. 생명을 머금은 씨앗이라도 땅에 묻히지 않으면, 어둠 속에 묻어두지 않으면 싹을 틔우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둠에 묻히지 않으면 성장도 깊이도 어렵다. 나를 가두어 캄캄해질 때 삶의 표면을 부유하는 일상 저편의 깊이에 닿을 수 있다.
감옥은 어떤 곳일까. 본회퍼와 서준식이 ‘옥중서한’을 썼던 그 감옥, 신영복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썼던 그 감옥은 어떤 곳일까. 어둡다 못해 캄캄한 곳이 아닐까. 그러므로 깊이에로 침잠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뛰던 감각이 잠잠해지고 ‘거북이 머리와 사지를 갑 속으로 끌어들이듯’,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그런 곳이 아닐까.
인도의 지성 네루가 쓴 이 책은 ‘아마드나가르 요새’의 감옥에서 시작하여 ‘다시 아마드나가르 요새’의 감옥으로 끝나는 파격적인 인도 역사서이다. 감옥에 갇힌 네루, 또한 식민지라는 감옥에 갇힌 인도, 그 둘의 만남이 장엄하다.
네루의 감옥에는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고요함과 과거가 지니는 영속성’이 있었다. 책의 곳곳에 묻어나는 인도에 대한 고뇌와 애정이 남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외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아마드나가르 요새 감옥에서 네루는 인도의 ‘과거를 현재와 결합시키고 미래로 연장’시키려 몸부림친다. 처절한 몸부림이다.
네루는 식민지 인도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던 인도의 활력과 생기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철저하게 인도적인 시각으로 탐색한다. 서구적 시각, 즉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이 강조되던 시기에 이 작업을 통해 인도인에게, 나아가 동양인에게 역사적 자부심을 부여하고자 했다. 또한 문화적으로나 과학에서도 훨씬 앞서 있던 인도가 어떻게 처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짚어봄으로써 인도와 동양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도 역사의 맥을 짚으면서도 연도별 서술이나 사건의 나열에 얽매이지 않으며 오히려 인도의 정신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네루의 동양적 세계관은 제국주의, 서구의 기독교 문화, 서구의 영웅들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에서 두드러진다.
알다시피 네루는 역사가 혹은 학자이기 전에 정치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도사개론으로서 손색이 없다. 인도의 역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나 기술 방법이 그 어느 전문 역사가 못지않게 탁월하다. 철저하게 동양적이지만 편협하거나 오만하지 않다. 상호이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네루의 주요 관심사다. 1944년에 쓰인 책이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거룡 동국대 연구교수·인도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