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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外

입력 | 2003-04-04 18:15:00



◇유쾌한 시공간/고미숙 지음/414쪽/1만3900원/그린비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병권 지음/429쪽/1만3900원/그린비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 지음/270쪽/1만900원/그린비

고전은 끊임없이 다시 읽힌다. 수백 수천년을 두고 읽히고 또 읽히는 고전에는 주석이 덧붙여지고 해설서가 헌상되며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쌓여간다. 고전 자체를 건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그 주변을 맴도는 것은 그 깊은 함의에 대한 경외심의 표시이자 고전에 대한 기본적 예의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겁없는 소장 연구자들이 나서서 이런 고전들을 ‘다시 썼다’. 이들은 시공간을 꿰뚫고 저자의 심중을 넘나들며 텍스트를 조각조각 나누고 이으면서 묵직한 그 고전들의 사이사이에 독자들이 쉽게 비집고 들어갈 ‘틈’을 열어준다.

출판사 ‘그린비’와 함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라는 ‘무모한’ 기획을 한 사람들은 소장연구자들의 모임인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연구자들.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전’ 자체가 완전히 해체, 재구성돼야 했다”는 것이 기획자들의 변이다.

고전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인 2001년에야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만나 “‘열하일기’의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를 사방팔방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는 고미숙씨. 그는 중세를 탈출하고자 부심했지만 근대에 도달하지는 않았던 유목민으로서 박지원을 규정하며, 그를 프랑스 현대철학자인 질 들뢰즈와 조우시키고 철저히 근대인이 되고자 했던 정약용과 대비시켰다.

마르크스를 찾아가다가 니체를 만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됐다는 고병권씨. 그는 이미 2년 전에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소명출판)이라는 니체 연구서를 내놓은 ‘사회학도’다. 그는 니체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재구성하고 니체의 철학을 상징하는 그림들을 활용해 독자의 이해를 도우면서 차라투스트라를 향한 안내자가 돼 준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권용선씨는 철학책인 ‘계몽의 변증법’을 들고서, 그 책의 난해함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어 역시 ‘다시’ 썼다. 그는 두 명의 저자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직접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고, 이들을 기획회의 테이블로 불러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는 “신화적 세계로부터 인간을 빠져나오게 했던 이성이 왜 인간을 도리어 야만의 상태로 몰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20세기 참혹한 비극의 원인을 찾던 이들의 문제의식을 21세기의 현재로 끌어와 이라크를 침공하고 있는 미국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조금은 거칠더라도 이 시대를 통해 고전을 다시 보는 시각을 직접 담아내려 한 진지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발간된 3권 외에 마르크스의 ‘자본’, 플라톤의 ‘국가’, 스피노자의 ‘에티카’, 강유위의 ‘대동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홉스봄의 3부작(‘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이 기획돼 있다. 이들은 이 밖에도 더 많은 고전들을 ‘다시’ 쓸 수 있는 필자를 찾는 중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