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에른스트 벨러 지음/박민수 옮김/251쪽/1만원/책세상
20세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는 기존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 체계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전통적인 서양음악의 가장 근본적 토대가 장조와 단조의 이분법에 기초한 조성(調性) 음악이었다면, 그는 바로 이 조성 음악 자체를 파괴하기 위해서 장조와 단조로 이뤄진 음악 형식 자체를 파괴하려 한다.
그는 한 옥타브에 있는 12개의 음을 아예 무작위로 배열해서 새로운 음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음의 체계를 전통적 용어인 ‘음계’라고 부르는 대신 자신이 정한 명칭대로 ‘음렬(tone row)’이라고 부른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그는 서양음악의 토대인 조성 체계를 허물고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 혁명가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 옥타브를 12개의 음으로 나눈 서양음악의 토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가능하지 않을까?
니체는 서양철학사에서 뜨거운 감자와 같은 존재다. 그는 근대철학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철학의 장을 연 혁명적 사상가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근대철학의 마지막 후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니체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누구에게서, 혹은 어떤 근거에서 나타났는지 추적한다.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저자는 니체를 데리다와 수평적 관계에 놓음으로써 니체를 이미 근대적 사고 틀을 벗어나 새로운 사고 틀을 창출한 혁명가로 평가한다. 그래서 니체 철학의 혁명적 성격을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했던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에 대한 비판이 자연스럽게 이 책의 첫 장을 이룬다. 저자가 보기에 하이데거는 ‘존재자와 존재의 구분’이라는 자신의 발명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니체를 존재자에 집착한 마지막 형이상학자로 묘사했다. 하이데거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말로써 기존의 형이상학적 기반을 통째로 파괴하지만, 신을 ‘힘에의 의지’로 대체함으로써 여전히 형이상학의 전통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음성’과 ‘문자’라는 데리다의 문제 틀을 가지고 니체의 텍스트에 접근할 경우 평가는 완전히 달라진다. 니체는 이미 고전적 기호이론에 대한 불신을 무수히 표명하고, ‘음성’에 집착하는 형이상학자들과 달리 ‘문자’의 지평을 훤히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니체에 대한 데리다의 해석은 그런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은 혁명가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차연(差延), 기호, 놀이, 글쓰기와 같은 데리다의 개념은 니체에게 이미 있는 것이므로, 니체-데리다 혹은 데리다-니체라는 쌍생적 동일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니체가 새로운 사고 틀을 제시한 혁명가라는 저자의 주장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에 비교적 친숙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진부한 가설을 또 한번 반복한다는 느낌만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이 책의 백미는 니체-데리다의 관계라기보다 하이데거의 니체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영욱 건국대 강사·서양철학 imago103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