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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임지순/타이태닉이 ‘나노 합금’이었다면

입력 | 2003-04-04 18:28:00


1912년 4월10일 초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는 2200여명의 승객을 싣고 영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첫 항해를 시작했다. 4월14일 밤 4만6000t급의 타이태닉호는 20만t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빙산과 충돌했다. 배는 3시간 만에 침몰했으며 승객 1500명이 죽고 700명만이 살아남았다.

70여년 후인 1985년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로버트 발라드 박사는 3700m 바다 밑에 가라앉은 타이태닉호를 처음 발견해 수중촬영사진을 일반에 공개했다. 그리고 또 10년이 흐른 뒤인 1995년 해저탐사대는 타이태닉호의 유물과 선체 조각들을 인양할 수 있었다.

이즈음 일단의 영화제작자와 과학자들은 자신의 개성에 따라 각각 다른 두 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우선 20세기폭스와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을 내세워 인기스타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을 주연으로 1997년 크리스마스에 영화 ‘타이타닉’을 개봉했다. 2억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소위 ‘대박’을 터뜨려 무려 17억달러의 수익과 아카데미상을 휩쓸었고 여주인공이 타이태닉호의 이물(배의 머리) 꼭대기에서 십자모양으로 팔을 벌리고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던 모습은 세계 영화사에 기록될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당시 외환위기를 겪던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는데 17억달러의 순이익은 고급자동차 10만대 이상을 수출할 때의 이익에 해당한다.

한편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미주리대 금속공학과의 레일리 교수팀은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타이태닉호의 선체 조각을 분석하는 연구에 착수했고 그 결과가 미국 금속재료학회 학술지 1998년 1월호 특집으로 실렸다. 과학기술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당시 강철 주조기술이 어떤 수준이었으며 타이태닉호의 침몰이 혹시 재료의 불량에 의한 것은 아니었느냐는 점이었다. 그들은 주사형 전자현미경으로 강철 조각의 물질구조를 관찰했다. 최신 실험장치를 이용해 화학성분을 분석했고 강도를 시험하기 위해 충격을 가해 시료(試料)를 깨뜨려 보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실험 결과를 현대의 발달된 기술로 만든 첨단 강철 소재와 비교했다. 이들이 알아낸 중요한 사실은 당시의 강철에 유황과 인 성분이 대단히 많이 함유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비교 연구 결과 당시의 금속제조 기술로는 비교적 양질의 강철을 쓴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현재 기준으로 볼 때는 선박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낮은 수준의 강철이었다. 유황과 인 성분이 많은 강철은 낮은 온도에서 잘 부서지는 구조를 갖는데 당시 바닷물의 온도는 영하 2도 정도로 매우 낮았다.

이에 비해 현재 선박 제조에 쓰이는 강철은 영하 수십도에도 일정한 강도를 유지한다. 과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빙산과의 충돌 과정을 슈퍼컴퓨터로 재현했다. 그 결과 배의 옆면에 모두 1.2㎡ 넓이의 구멍이 생겼던 것으로 계산되었다. 이만한 구멍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하면 4만6000t의 타이태닉호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금속제조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나노 소재기술(1㎜의 10억 분의 1 수준에서 물체를 만드는 초미세 기술)을 이용하면 가볍고 강하면서 유연해 잘 부서지지 않는 금속을 합성할 수 있다. 타이태닉호가 현대의 첨단재료 기술로 건조되었다면 빙산과의 충돌에서도 살아남아 침몰을 면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당시에는 망루의 감시원이 빙산을 발견하자마자(당시에는 레이더가 없었다) 역추진을 하면서 급하게 진로를 돌렸지만 불과 40초만에 배의 우측면과 빙산이 충돌하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고도로 발달한 레이더 시설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충분히 피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의 이러한 아쉬움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타이태닉호의 본체는 아직도 희생자들과 함께 대서양 심연에 가라앉아 있다.

임지순 서울대 교수·물리학